[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한반도 평화의 모멘텀이 될 것"이라며 방북을 제안하자, 교황은 "초청장을 보내주면 기꺼이 가겠다"고 흔쾌히 수락했다.
3년 만에 교황이 다시 한 번 방북 제안을 수용하면서, 지난달 유엔총회에서 종전선언 제안으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다시 시동을 걸고 있는 문 대통령은 남북,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 큰 힘을 얻게 됐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이날 바티칸 교황청을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을 단독 면담하며 첫 순방 일정을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교황국에서 배석자 없이 진행된 면담에서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을 설명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속적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축복과 지지의 메시지를 보내 준 것에 사의를 표했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 평화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속적인 지지도 확인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9일(현지시간) 바티칸 교황청을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또 문 대통령과 프란치스코 교황은 코로나19와 기후변화, 난민 등 국제사회가 직면한 여러 현안들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앞으로도 이러한 분야에서 국제사회의 행동을 독려하기 위한 협력을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방북을 공식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교황님께서 기회가 돼 북한을 방문해 주신다면, 한반도 평화의 모멘텀이 될 것"이라며 "한국인들이 큰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초청장을 보내주면 여러분들을 도와주기 위해, 평화를 위해 기꺼이 가겠다"며 "여러분들은 같은 언어를 쓰는 형제이지 않느냐, 기꺼이 가겠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만남은 2018년 10월 이후 3년 만이다. 당시 문 대통령은 교황의 방북 문제를 논의한 바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초청 의사를 대신 전달하자 "북한의 공식초청장이 오면 갈 수 있다"며 긍정적 의사를 밝혔지만 지금까지 성사되지 않았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논의도 자연스레 관심에서 멀어졌다. 이런 점에서 교황의 방북 성사를 위해 북한이 어떤 호응을 할 것인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번에 또 다시 방북 의사를 나타내면서 실제 성사 여부도 주목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이 극적으로 이뤄진다면, 이를 계기로 정체됐던 정부의 종전선언 구상도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또 문 대통령에 이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면담하면서 문 대통령의 메시지가 교황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에게 전달될 것으로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미 정상 간 간접 대화의 가교 역할을 하는 셈이다.
아울러 문 대통령의 방북 요청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화답하면서 자연스럽게 김 위원장의 초청 의향을 재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김 위원장이 어떤 식으로든 교황의 발언에 대해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 됐고, 남북 간 대화가 오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평가다. 다만, 코로나19 상황이 변수로 꼽힌다. 북한이 코로나19 상황으로 국경을 봉쇄하고 있고 외부인의 출입국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한편 교황궁 방문 일정에는 정의용 외교부 장관, 이인영 통일부 장관, 서훈 국가안보실장, 이호승 정책실장, 추규호 주교황청 대사, 신지연 1부속실장, 박용만 한국몰타기사단 대표가 동행했다. 교황청에서는 레오나르도 사피엔자 몬시뇰 교황청 궁내원 의전 담당, 교황청 의장단이 나와 문 대통령 내외를 환영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바티칸 교황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단독 면담 후 ‘평화의 십자가’를 보며 대화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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