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붓딸 자해 우려 방문 손잡이 훼손…헌재, 기소유예 취소
"수사 과정서 오상피난 인정할 사유 있는지 검토했어야"
2022-01-02 09:00:00 2022-01-02 09:00:00
[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의붓딸이 방문을 열어주지 않아 손잡이를 훼손한 혐의로 의붓어머니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의붓딸이 자해를 시도했던 전력을 고려해야 했다면서 검찰의 처분을 취소했다.
 
헌재는 A씨가 낸 헌법소원심판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수원지검이 내린 재물손괴 혐의에 대한 기소유예 처분은 자의적인 검찰권 행사로서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취소하란 결정을 내렸다고 2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020년 9월27일 오전 10시쯤 아파트에서 의붓딸 B씨가 방문을 열어주지 않자 펜치로 방문 손잡이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A씨의 재물손괴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 하지만 A씨는 해당 처분이 자신의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면서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B씨는 이미 몇 차례 자해를 시도했고, 술을 마시면 자살을 생각하게 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으므로 이 사건 당시 B씨가 술을 마시고 들어와 A씨가 여러 차례 방문을 두드렸는데도 열어 주지 않았다면 A씨는 B씨가 자해했거나 자해를 시도할지도 모른다고 오인할 만한 상황이 있었던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며 "그러므로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사건 당시의 객관적인 사정을 추가로 수사해 오상피난을 인정할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해 재물손괴 혐의 인정 여부를 판단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B씨는 2019년 2월부터 2020년 4월까지 이뤄진 정신치료와 상담 과정에서 '친어머니의 가출과 아버지의 잦은 외박, 그에 이은 재혼으로 인해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몇 차례 자해를 시도했다. 술을 마시면 자살 생각을 하게 된다'는 취지로 말한 적이 있고, A씨가 방문 손잡이를 두드리기 직전까지 방 안에서 자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1986년과 2014년 "법익 침해가 발생할 개연성이 높은 상태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행위자가 위난의 발생이 근접한 상태였다고 오인하는 데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즉 오상피난의 경우에는 위법성 조각 사유의 전제 사실에 대한 착오로서 범죄 성립이 조각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또 재판부는 "이 사건 당시 A씨의 남편이자 B씨의 아버지인 C씨가 이 사건 아파트의 방문 손잡이에 관해 사실상, 실질적으로 처분 권한을 가진 자로 볼 수 있다"며 "그런데 사건 당시 C씨와 적시에 즉각적인 연락을 할 수 없는 등 현실적 승낙이 얻기 불가능한 사정이었는지, B씨가 아파트에서 최근 자해를 시도한 사실이 있는지, A씨가 방문을 두드렸을 때 B씨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지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해 볼 때 C씨가 A씨의 손괴 행위를 당연히 승낙했을 것으로 예견할 수 있다고 볼 여지도 있었다"고도 설명했다.
 
헌재 관계자는 "'방문 손잡이를 훼손했다'는 형법상 재물손괴죄의 구성 요건 해당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청구인은 의붓딸의 자해와 같은 생명·신체에 대한 침해 행위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의붓딸이 자해 전력이 있었던 사실이 인정되므로 이 사건 당시 청구인의 객관적인 행위만으로는 재물손괴죄 혐의가 인정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피청구인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자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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