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형법에서는 형벌의 종류와 관련하여 징역, 금고, 벌금, 구류 등을 규정하고 있다. 특히 벌금형은 5만원 이상의 일정 금액을 국가에 납부하도록 하는 형벌로서, 징역이나 금고 등과 달리 범죄자의 사회 내 관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상생활을 보장해준다는 점에서 큰 장점을 갖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결과적으로 국가측면에서 세수확보를 보장해주는 점도 있어 형벌의 꽃이라고 할 정도로 실무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벌금형과 관련하여 우리나라는 현재 총액벌금형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총액벌금형이란 범죄자의 재산이나 소득에 상관없이 각 범죄별로 벌금액의 상한을 정하고, 그 범위 내에서 법관이 특정 액수의 벌금형을 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제도는 선고받는 사람의 재산상태에 따라 형벌의 효과가 달라지는 불평등이 발생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소득이 높은 범죄자는 비교적 손쉽게 벌금을 내고 자유의 몸이 되는 반면, 매년 3만~4만명이 벌금을 내지 못해 노역장 유치로 이를 대신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문제인식 하에 작년 상반기부터 정치권을 중심으로 재산 또는 소득에 비례하여 벌금액을 차등산정하자는 논의가 심화되고 있다. 통상 재산 규모가 클수록 벌금을 많이 내는 것을 ‘재산비례벌금제’라고 한다(재산과 소득을 모두 고려하기도 한다). 작년 상반기 한 여론조사 기관 발표에 의하면 재산비례벌금제 도입에 대해 찬성 의견은 47.6%, 반대 의견이 45.5%로 첨예하게 대립했다. 대체로 진보성향을 가진 응답자는 찬성 의견이 많고, 보수성향을 가진 응답자는 반대 의견이 많은 것이 특징이었다.
일부 다른 나라의 경우 차등벌금제도를 이미 도입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경우 재산비례벌금제의 한 종류인 ‘일수벌금제’를 도입하고 있다. 그 외 핀란드와 덴마크, 스위스 등 일부 유럽 국가 역시 일수벌금제를 도입하였다. 부유한 자에 대해 차등적으로 더 많은 벌금액이 선고되도록 하는 것에 중점을 맞춘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일수벌금제는 범죄자의 하루 수입을 단위로 벌금을 매기는 제도를 의미한다. 벌금형을 일수로 산정해 선고하고, 일수 정액은 개인 및 경제적 사정을 고려해 법원이 정하는 방식으로 운영 중이다. 예를 들어 폭행범에게 벌금 10일을 선고하고 이 사람의 소득을 확인해 1일 벌금을 10만원을 확정한 뒤 이를 곱해 벌금 100만원을 최종 판결하는 방식이다. 같은 벌금 일수를 받아도 소득이 높을수록 최종 벌금액이 높아지는 셈이다.
일수벌금제 등으로 대표되는 차등벌금제도 도입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우선 차등벌금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동일 죄에는 동일한 처벌을 받는 현 제도하에서 징역형 등과 달리 벌금형에만 차등적용하는 것이 차별로 인식될 수 있다는 점, 형벌의 경중을 죄의 정도가 아닌 부의 정도라는 기준으로 결정한다고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될 수 있다. 더해서 재산 규모와 소득 규모를 어떻게 산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올해 1월초부터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적정한 벌금형 산정을 위한 제도 개선 및 실무 대응방안에 대한 연구에 나선다고 한다. 또한 벌금형을 징역형과 연동하는 방안, 물가와 연동하는 방안을 비롯해 양형기준을 재설정하는 방안도 논의한다고 한다. 사회 각계의 의견을 다양하게 반영하여 건설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기를 바란다.
이진우 법무법인 '강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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