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국내 정비사업에서 건설사의 시공 계약 해지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원자재 가격에 따른 공사비 인상 여부를 놓고 시행사(조합)와 시공사 간 이견이 빚어지면서 시공권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속출한 것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중소건설사의 경우 수주해지 금액이 매출액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법적 공방으로도 번지는 분위기다.
2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현재까지 공시된 건설사의 단일 판매 및 공급계약 해지건수는 모두 11건으로 집계됐다. 이들 건설사의 해지금액은 총 2조480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는 HJ중공업과 한라, 아이에스동서, 일성건설, HDC현대산업개발을 비롯해 효성중공업과 계룡건설산업 등 중소건설사들이 다수를 이뤘다.
아파트 공사 현장 모습.(사진=연합뉴스)
관건은 공사비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주요 자재가격이 오른 가운데 공사비 증액을 놓고 합의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HJ중공업은 지난 26일 수원 신반포한신아파트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으로부터 시공자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앞서
HJ중공업(097230)과
태영건설(009410)은 지난 2017년 수원 신반포한신아파트 시공사로 선정됐다. 그러나 공사비 협상 결렬 놓고 마찰이 빚어지면서 첫 삽을 뜨지 못했다. 신반포한신아파트 시공권 관련 HJ중공업의 낙찰금액은 840억원으로 당시 매출액의 2.70%에 해당한다.
HJ중공업은 “총회에서 시공권 계약해지 안건을 의결한 것”이라며 “효력정지가처분 신청 등 가능한 법적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금리인상과 자재값 인상으로 분양 사업성이 떨어지는 등 운영여건이 악화한 점도 계약해지의 사유로 나오기도 했다.
계룡건설(013580)산업의 경우 ‘파주 문산읍 선유리A1BL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개발사업’ 공사 도급계약 체결 후 시행사의 운영 여건 안화로 인해 공급계약이 해지됐다. 해지금액은 2977억원으로 당시 매출액의 13.08% 규모다.
올해 2건의 공사 수주 해지 통보를 받은
한라(014790)는 지난 4월 부산 문현제일 지역주택조합 아파트 신축공사에 이어 지난달 전주 기린로 지역주택조합 주상복합 신축공사 도급계약도 해지됐다. 각 공사의 해지금액은 1232억원, 711억원으로 매출액의 9.45%, 5.45%를 차지한다.
한라 측은 “부산 공사 수주의 경우 착공 준비를 하던 중에 발주처가 일방적으로 도급계약 해지를 통보했고 전주 공사 수주 관련 발주처는 사업추진 여건 악화로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면서 “해지 처분의 위법성 등을 법률 검토한 후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표=뉴스토마토)
중소건설사의 경우 수주 한 건이 매출액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법적 대응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일성건설은 지난 2월 노원2동 주택재개발정비사업 수주계약 해지를 공시했는데 해지금액은 1305억원으로 2020년 매출액의 38.3%에 달한다.
아이에스동서(010780)는 지난 4월 대전 중구 용두동2구역 재개발에 이어 5월 창원 용원동 아파트 신축공사 계약에 대한 해지 통보를 받았다. 해당 공사 해지금액은 1418억원, 1661억원으로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7%, 17.2%다. 계약 해지 배경에는 조합 집행부가 교체되고, 공사비 증액 등을 놓고 의견충돌이 빚어진 점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아이에스동서는 용두동 시공사 계약해지 통보에 대해 '시공자 지위 확인의 소'를 제기한 상태다. 이와 함께 아이에스동서는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생활권1구역 재개발조합으로부터 계약해지 통보 받고 ‘시공자 지위 확인의 소’를 제기했지만 패소하기도 했다.
건설사 한 관계자는 “공사비 증액을 두고 시행사에서 타절 통보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공사비 증액은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의견을 조율하기 쉽지 않다”라고 평가했다. 정부가 물가 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이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놨지만, 물가변동 배제 특약 등으로 인해 민간 공사 계약에서 공사비를 조정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시장에서는 건설 원가 상승과 업황 침체로 공사비 등을 둘러싼 시행사와 시공사 간 마찰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건설업체에 대한 세금 감면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투자 디플레이터 성장 속도가 5%를 넘어서게 되면 건설사의 시공 수익이 제로에 가깝게 된다”면서 “자재가격과 인건비, 금융비용 상승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한시적이라도 기존 중소 건설업체에 제공하고 있는 세금 감면 정책에 대해 수혜 대상을 확대하고 감면폭을 높일 필요가 있다”라고 제언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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