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상승장에서 앞다퉈 전환사채(CB)를 발행했던 바이주들이 역풍을 맞고 있다. 올해 이어진 하락장에서 주가가 꾸준히 하락하면서 발행했던 CB들의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 행사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일부 상장사들의 경우 CB 풋옵션 행사로 인한 유동성 위기까지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2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7월1일부터 이달 16일까지 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메자닌 만기 전 취득 공시는 97건에 달한다. 하루 평균 약 2건의 만기 전 상환 공시가 이뤄진 것으로 전년 동기(67건) 대비 44.78% 증가했다.
CB와 BW 등 메자닌의 만기 전 상환이 증가한 것은 최근 이어진 하락장에서 전환가액 한도까지 리픽싱 된 기업들이 늘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CB 등 메자닌은 발행 후 특정 시기가 되면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옵션이 달린 채권이다. 통상 주가가 하락할 경우 일정 시점마다 하락한 주가만큼 전환가액을 낮추는 리픽싱 조항이 존재한다. 주가가 하락할 경우 주식 전환가액도 낮아지기 때문에 주가가 다시 상승했을 때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다. 리픽싱의 경우 일반적으로 최초 발행가액의 70~90% 수준까지 가능한데, 이미 전환가액이 한도까지 낮아질 경우 시세차익을 포기하고 풋옵션을 행사해 투자 원금을 회수하기도 한다.
CB 풋옵션 행사는 자금 여력이 넉넉한 기업의 경우 재무구조가 개선과 함께 향후 ‘오버행’(잠재적 매도물량) 이슈도 해소할 수 있다. 다만, 잉여자금이 부족한 기업들은 유동성 위기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 부채로 계상됐던 CB가 주식으로 전환될 경우 발행사의 재무구조 개선을 기대할 수 있지만, 풋옵션이 행사되면 앞서 유치한 투자금을 토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제약바이오 업종의 경우 CB 풋옵션에 따른 유동성 위기가 더욱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당장 수익 창출이 어렵고 연구개발 기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제약바이오업종의 특성상 자금부족은 임상 중단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어서다. 실제
파멥신(208340)의 경우 자금 부족으로 지난 3년간 진행해온 재발성 교모세포종 신약 후보물질 임상을 중단하기도 했다.
일부 바이오기업들의 경우 CB 풋옵션에 따른 채무 상환을 위해 ‘급전’을 빌리거나 유상증자에 나서는 등 유동성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합성신약을 연구 개발 기업
카이노스메드(284620)의 경우 지난 2020년 발행한 CB의 채무상환을 위해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총 263억원 규모의 유증을 진행했으며, 이중 170억원이 CB 상환에 우선 사용된다.
재무구조가 악화 우려로 자회사를 흡수합병하는 경우도 있다. 줄기세포치료제 개발기업
코아스템(166480)의 경우 지난달 자회사인 비임상시험 전문기관 켐온을 흡수합병하기로 결정했다. 표면적 합병이유는 양사의 시너지 창출과 사업성 강화지만, 업계에선 CB 풋옵션 행사를 우려한 대응으로 보고 있다.
코아스템은 줄기세포치료제 ‘뉴로나타-알주’의 임상을 위해 CB발행을 통해 41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는데, 전환가액이 한도치까지 하락하며 풋옵션 행사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김경숙 코아스템 대표와 송시환 켐온 대표는 지난달 양사 간 합병 배경에 대해 “코아스템의 410억원 전환사채 조기상환청구 가능성이 존재해 불확실성을 차단하려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양사의 자금을 통합해 재무건전성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코아스템의 자회사인 켐온의 경우 코아스템보다 높은 매출액과 재무건전성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신용도가 낮거나 자금조달력이 부족한 바이오주들의 경우 CB 풋옵션 행사에 따른 유동성 위기가 이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 2020~2021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제약바이오 투심이 식은 데다, 지난해 CB의 전환가액 상향 조정이 의무화되면서 리픽싱 막차를 타기 위한 CB 발행이 크게 늘었다”며 “당분간 증시 변동성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일부 바이오기업들의 CB 풋옵션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약바이오 연구실. (사진=뉴시스)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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