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대 주도권을 잡기 위한 기아의 조 단위 국내 투자가 노조에 가로막혔다. 미국 등 글로벌 투자와 함께 경기도 화성에 전기차 전용 공장을 짓기로 했지만 노조가 규모가 작다며 착공을 막고 나섰다. 25년 만에 국내에 짓기로 한 완성차 공장이 노조 '몽니'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기아는 지난 3월 목적기반모빌리티(PBV) 전기차 전용공장을 짓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2023년 3월 착공을 시작해 2024년 말 완공, 2025년 양산을 목표로 잡았다. 기아는 양산시점에 연간 10만대 생산 능력을 확보하고 향후 시장 상황에 맞춰 최대 15만대까지 확장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노조는 처음부터 20만대 규모로 확대해야한다고 맞서고 있다. 일감을 늘려야한다는 이유에서다. 사측은 생산규모를 늘리면 시간과 비용이 증가하고 이는 PBV 및 전기차 시장 진입을 늦춰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노조는 기아 광명오토랜드 2공장의 전기차 라인 전환에도 일감 감소를 우려하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노사 대립으로 당초 계획 보다 양산 시점이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 특히 기아의 2030년 글로벌 PBV 판매량 150만대 달성, 시장 1위 목표도 틀어지게 된다.
기아의 전기차 전환이 노조에 가로막히자 해외 투자와 대조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내 6조3000억원을 투자해 조지아주에 짓기로 한 전기차 공장은 부지 확정부터 착공까지 3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전기차 공장과 관련해 노조의 눈치를 적잖이 봤다. 지난 7월 현대차가 울산공장에 전기차 공장을 건설하고 기아가 오토랜드 화성에 PBV 전기차 전용공장을 짓기로 발표한 데는 노조가 파업을 벌이면 조 단위의 손실이 불가피해 사측이 대승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현대차그룹 노조는 그동안 시대 급변에 따른 변화에 매우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해외에 전기차 공장을 짓지 말고 국내에 지으라'는 조건이나 '인력 충원 및 정년을 연장해 달라'는 요구를 한다. 세상이 변해도 우리 목소리만 들어주면 된다는 논리다.
노조가 기업의 신규 투자까지 발목을 잡으면 결국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뒤쳐져 기업이 돈을 벌지 못하고 성과급은 물론, 고용까지 물 건너가게 되는 뻔 한 상황에 봉착한다. 그런데도 노조의 안중에는 기본적인 이런 우려조차 없다. 현대차그룹은 대세로 자리 잡은 온라인 차량 판매조차 노조 반대에 부딪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 및 미램모빌리티 시장 선점을 위한 치열한 생존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핵심인 노사관계가 흔들린다면 기업 생존에 치명적이다. 국내 전기차 공장이 지어진 이후에도 노조의 변화가 없다면 앞으로 현대차그룹이 국내에 투자할 이유는 없다.
황준익 산업1부 기자 plusik@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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