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신기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 오묘한 계획은 땅의 이치를 다했노라. 전쟁에 이겨서 그 공은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을지문덕 장군의 여수장우중문시)
"언제까지 천공 타령이냐. 황당무계한 의혹까지 제기했다." 본지의 지난달 28일자 <천공 최측근 신경애 "바이든 방한 전 허창수 미팅…보고서 만들어 대통령께">라는 제하의 단독 보도 직후 대통령실이 내놓은 첫 반응입니다. 그러면서 "수사가 이미 진행 중인 만큼 결과가 나오는 대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신종 '권력형 겁박'입니까. 윤석열 대통령에게 묻겠습니다. 그래서 무속인 천공 조사는 안 하는 겁니까. 못하는 겁니까. 천공 얘기만 나와도 알레르기 반응을 하는 대통령의 태도도,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중언부언하는 대응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대선 후보 시절 공정과 상식, 법치를 외쳤던 윤 대통령은 어디로 숨었습니까. 대한민국에서 천공이란 존재는 치외법권이자, 성역입니까. 대통령실의 천공 대응은 연역적 사고와 경험적 추론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입니다. 단언컨대, 법치주의에서 '현대판 소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천공 의혹은 왜 잦아들지 않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윤 대통령과 연결고리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실 관저 이전부터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조문 회피, 이태원 참사 연속 조문, 미국·멕시코 접경지대의 난민특구 지정 의혹까지…. 이쯤 되면 벗겨도 의혹만 나오는 '저주에 걸린 양파' 같습니다.
여권 내부에선 현 정부에 대한 의혹 제기 때마다 '배후론'을 주장합니다. 혹자는 '탄핵 시즌 2'를 위한 범야권의 계략으로 평가 절하합니다. 둘 다 틀렸습니다. 제아무리 '정치적 공학'의 외피를 뒤집어써도 이 주장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윤 대통령이 극도로 초조해진 걸까요. 대통령실이 꺼낸 것은 '고발과 '겁박'입니다. 언론인에겐 고발, 언론사엔 겁박을 일삼고 있습니다. 지난달 3일엔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본지 기자 3명을 고발했습니다. 적반하장입니다. 뻔뻔함의 극치입니다.
'황당무계하다'는 반응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엔 언론과 야권이 제기하는 천공 의혹은 '가짜뉴스'라는 전제가 깔렸습니다. 취임 이후 천공과 만난 적이 없다는 윤 대통령의 말을 공리로 여기니, 대선 후보 시절 전 정권을 비판할 때 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프레임에 스스로 갇혔습니다. 지금 대통령실의 대응은 확증편향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닌지요.
확증편향에 빠지니, 남은 것은 선택적 정의와 선택적 의심뿐입니다. 계속되는 것은 윤 대통령의 '뒷짐 정치'입니다. 평생 검사의 길만 걸어서일까요. 정치적 결자해지보다 검·경 수사 결과와 법원 판단을 우선시하는 리걸 마인드(법적 사고)만 엿보입니다.
독일의 정치학자 막스 베버는 "정치는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서서히 뚫는 작업"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정치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법적 사고를 뛰어넘는 정치적 결단입니다. 의혹 제기 때마다 진영논리 뒤에 숨는 정치는 윤 대통령이 구체제로 규정한 반지성주의입니다. 권력 사유화 의혹의 정점인 천공 논란에 뒷짐으로 일관하는 것은 지적 암흑 상태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노름판 타짜와 협잡꾼이 판치는 '현실판 아수라'와 무엇이 다릅니까.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완성된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최신형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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