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3월20일 서울 종로구 한국금융연수원 별관에 마련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미국 정보기관 중앙정보국(CIA)의 대통령실 도청 의혹은 지난해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시 보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정치권 우려가 현실로 바뀐 경우입니다. 결국 제대로 된 조율 없이 이번 이전을 추진한 대통령실의 '졸속 행정'이 끝내 보안 구멍을 야기했다는 지적입니다.
"용산 졸속 이전, 도청 무방비 상태"…예고된 참사
10일 야권은 이번 도청 의혹 배경에 대통령 집무실 부실 이전이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국회 국방위원회·외교통일위원회·정보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 일동은 기자회견을 열고 새 정부 출범일에 맞추기 위해 국방부를 새 대통령실로 급히 꾸리려다 보니, 보안을 강화하는 벽면 공사 등을 새롭게 하지 못했고 보안 조치 공사나 리모델링 등도 짧은 기간의 수의계약 방식으로 급하게 이뤄졌다고 지적했습니다. 공사에 필요한 자재나 장비에 대한 보안 조치와 확인이 부족했고, 공사 인력에 대한 신원조회도 정식으로 하지 못하고 서약서만을 받는 등 졸속으로 공사가 이뤄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대통령 취임식을 하루 앞둔 지난해 5월9일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될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 장식이 걸려 있다. (사진=뉴시스)
민주당 의원들은 "현 대통령실 담벼락 바로 옆에는 주한미군 기지가 있다"며 "대통령실과 미군 기지가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만큼, 우리 대통령실의 방첩 조치와 보안은 취약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습니다.
국방위 야당 간사인 김병주 민주당 의원 역시 MBC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졸속 이전 탓에 대통령실 벽이 도청에 무방비로 노출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의원은 "(대통령실) 창문은 도청 필름을 붙여 도청 대비가 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벽은 돼 있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벽을 하려면 다시 대공사를 해야 하지 않나. 대통령실 졸속 이전을 하면서 시간에 쫓기다 보니까 보안대책이 제대로 안 됐다"고 꼬집었습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는 지난해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통령 선거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2월15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유세 출정식 때만 해도 "국민 위에 군림하는 '청와대 시대'를 마무리하고, 국민과 동행하는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며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광화문으로 옮기겠다는 청사진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보안 등이 문제가 되자 불과 한 달 만에 용산 국방부 청사를 새 집무실 후보로 올렸고 취임과 함께 '용산 시대'를 열기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한다고 발표한 지난해 3월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청사 앞으로 반환되는 미군부대가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집무실 이전 논란되자…대통령실 "청와대보다 용산이 더 안전"
하지만 지난해 3월 22일 본지가 '미디어토마토'에 의뢰한 여론조사(19~20일 조사,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 따르면 국민 절반이 넘는 58.1%가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이전에 대해 반대한 반면 찬성은 33.1%에 그칠 만큼 반대 여론이 강했습니다. 고층 건물이 많은 용산은 지리적으로 경호가 힘들다는 지적과 함께 주한미군 기지가 얼마 전까지 국방부 근처에 있어 보안이 취약하다는 문제가 집중 거론됐습니다.
당시 국민의힘 내부에서조차 보안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육군 중장 출신인 신원식 의원은 지난해 5월 이종섭 국방부 장관 청문회에서 "국방부에서 합동참모본부 신청사로 들어가는 부분은 아주 혼란스럽다"며 "도청 방지에 미흡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임태희 당시 대통령 당선인 특별고문은 지난해 3월 "경호 경비를 튼튼히 하거나 긴급사태에 대비하는 데 좀 차질이 적은 쪽에 아무래도 위치하는 게 좋다"며 "시한을 정해두고 이렇게 급하게 추진하는 것은 매우 무리가 따를 가능성이 많다"고 조언했습니다.
하지만 당선인 신분이던 윤 대통령은 같은 달 열린 이전 관련 기자회견에서 "빠른 시일 내 가장 효율적으로 이전을 완료해 안보 태세에 전혀 지장이 없도록 할 생각"이라며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결국 계획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실 이전이 안보 위기를 낳았다'는 민주당 주장에 대해 "팩트와 거리가 멀다. 청사의 보안 문제는 이전 전부터 완벽하게 준비했다"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안·안전은 청와대보다 용산이 훨씬 더 탄탄하다"고 반박했습니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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