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윤석열정부 집권 후 꽉 막혀있던 한중관계가 물꼬를 틀 수 있을까요?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취임 후 첫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위해 중국 베이징을 방문할 예정이고, 이달 말에는 서울에서 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립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그간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대결이라는 '이념 외교'에 편승하며 중국을 과도하게 압박했습니다. 초대 주석 마오쩌둥 이래 중국 역대 최고 지도자들이 '핵심 이익 중 핵심'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만해협 문제에 윤 대통령이 '힘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한중관계는 여전히 '리스크'를 안고 있습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2024년 재외공관장회의 폐회식에서 폐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중일 정상회의', 경제 협력 초점
8일 일본 <지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한중일이 오는 26~27일 서울에서 정상회의를 여는 방안을 최종 조율하고 있다고 보도 했습니다. 이번 정상회의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참석합니다.
이달 말 개최를 앞둔 한중일 정상회의는 2019년 12일 이후 끊겼던 3국 대화 물꼬를 트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일본 외무성에 따르면 3국 정상회의에서는 한일·중일 정상회담 등 각국 회담도 조율 중에 있습니다.
아직 3국 정상회의 의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지난 3월 이희섭 3국협력사무국 사무총장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인터뷰에서 한중일이 직면한 과제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북한 미사일 도발 △지정학적 긴장 △공급망 문제 등을 꼽았습니다.
조 장관도 한중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 베이징을 찾아 왕이 중국 공산당 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을 만날 예정입니다. 왕 부장은 지난 2월 조 장관 취임 후 상견례를 겸한 첫 통화 당시 중국 방문을 초청했습니다.
우리 외교부 장관이 양자 회담을 위해 중국 베이징을 찾는 것은 지난 2019년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 방문 이후 6년 반 만에 처음으로, 그간 막혔던 양국 간 대화에 물꼬를 틀 수 있을 지 이목이 집중됩니다. 관련해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상호 관심사에 대해서 깊이 있는 대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강준영 한국외대 중국학과 교수는 <뉴스토마토> 통화에서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와 조 장관의 방중은 한중관계에 있어 희망적 신호"라며 "3자 회담은 정치적 안건을 최대한 배제하고 경제·사회 분야 협력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한중관계도) 물꼬를 트는 것이라 봐야 한다"고 평가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7일(현지시간) 자카르타 컨벤션 센터(JCC)에서 열린 한중 회담에서 리창 중국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정부 대중 기조 '걸림돌'…의제 제한적일 수도
문제는 윤석열정부 집권 이후 악화된 한중 사이의 앙금입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텔레그래프> 인터뷰에서 "국제사회와 함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절대 반대 한다"며 대만 해협 문제와 관련한 중국의 행보를 직접 겨냥했습니다. 영국 국빈 방문 직전에 한 인터뷰에서 뜬금없이 양안문제를 거론한 건데요. 윤 대통령이 양안문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까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에 중국 당국은 "남이 손짓발짓 할 필요는 없다. 대만문제는 순전히 중국의 내정이며, 절대로 외부세력의 간섭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며 "남중국해 문제에서도 중국과 동맹국들은 능력과 믿음, 지혜로 문제를 잘 처리하고 있다. 한국은 남중국해 문제의 당사국이 아니니, 성가시게 떠들 필요가 없다"고 직격했습니다. 이후 한중 간에 유의미한 대화는 단절 됐습니다.
또 중국은 '한국이 (대만 문제 등)중국의 핵심이익 개입 시 협력 불가' 등 4대 불가를 통보하기도 했습니다.
강 교수는 "어느 일방이 일방적으로 현상을 변경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은 국제주의 원칙인데, 우리 정부가 '힘에 의한'이라는 표현한 것이 문제"라며 "중국을 충분히 자극할 수 있었던 표현인데, 우리는 국제주의 원칙을 강조한 것이라는 중립적 메시지를 전달하며 상황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윤석열정부의 본질적 기조 변화 없이는 한중일 정상회의, 한중 대화가 일회성으로 끝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은 "한국이 (중국을 압박하는)인도·태평양 전략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관계 발전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아니라, 경제를 담당하는 리창 총리가 방문해서 협의한다는 것은 각국의 입장을 밝히고 끝나는 회의가 될 우려가 있다"고 관측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우리 정부가 또다시 '양안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북중러 협력의 '약한 고리'인 중국에 북핵 문제와 관련한 '건설적 역할'을 요구할 것이라 전망하고 있는데요.
정 센터장은 "대만 문제에 대해 중국 입장이 명확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대만 문제를 언급하게 되면 상황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며 "자칫 마지막 한중 회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때문에 중국 입장에서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경제 협력과 미래세대 교류 등에 대해서만 의제로 오를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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