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공기업 낙하산 인사, 현 지배구조로 못 막는다
'독립성 결여' 이사회 개편 필요
"원천 차단보다 임원 요건 강화해야"
2024-10-28 06:00:00 2024-10-28 06:00:00
[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금융당국이 공기관의 낙하산 인사를 차단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지배구조를 뜯어고치지 않는 한 사실상 막기 어렵다는 게 중론입니다.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는 민간 금융사 수준으로 이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는데요. 공공기관 운영법 등 법령 개정이 필요합니다. 정치권 또는 관료 인사를 낙하산이라고 원천적으로 차단하기보다는 경제·금융 전문성 보유 등 자격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제2의 김대남' 수두룩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금융권 낙하산 인사에 대한 질책이 이어지자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개선책을 살펴보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국감에서는 예금보험공사가 대주주로 있는 SGI서울보증의 낙하산 인사가 논란이 됐습니다. 김대남 전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이 특별한 금융 관련 경력이 없는데도 서울보증 상근감사위원으로 임명돼 공분을 산 바 있습니다.
 
예보 이외에도 경제부처 산하 공기관에는 정치권 인사가 수두룩합니다. 신용보증기금의 권택기(국회의원 출신)·최유미(대통령실 행정관 출신) 비상임이사도 현 정부와 인연이 있는 낙하산 인사로 거론됩니다. 지난 3월과 7월, 천청호 전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과 차순오 전 대통령실 정무1비서관은 각각 기술보증기금 상임이사와 수출입은행 상임감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정권 교체 때마다 낙하산 논란이 불거지는 이유는 공기관의 지배구조 때문입니다. 민간 금융사의 경우 임원후보추천위원회 등을 가동하는 이사회 운영권을 사외이사들이 갖고 있는데요. 반면 공기관 이사회 의장은 기관장이 겸임하고 있습니다. 현 정부에서 선임한 기관장이 정부 입김을 막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기관장이 이사회 의장을 겸임할 수 있는 배경에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이 있습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기업은행은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되고,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한국주택금융공사 등 5곳은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인데요. 공운법에 따르면 준시장형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의 이사회 의장은 기관장이 된다고 기재돼 있습니다.
 
김병환(오른쪽) 금융위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에 대한 종합감사에서 의원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금융 공기관의 낙하산 인사 관련 문제가 심각하다는 야당 의원들의 지적에 공감했다. (사진=뉴시스)
 
낙하산 보다 전문성 문제
 
정치인 출신의 정피아 논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보험연수원장에는 하태경 전 의원인 취임했는데, 보험 분야 경력이 없는 정치권 인사가 내려왔고, 증권 정보기술(IT) 전문 기관인 코스콤 사장에는 윤창현 전 국민의힘 의원이 선임되면서 낙하산 논란이 이어졌습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각종 인허가 등 금융 산업에 대한 당국의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업무 연관성이나 전문성보다는 정부의 정책 기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선도 닿을 수 있는 정치권 출신들을 찾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민간 금융사도 낙하산을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대통령실 출신들은 BNK경남은행 상임감사위원과 NH농협은행 사외이사로 이동하거나 한국금융연구원 초빙연구위원, 비바리퍼블리카(토스) 대관 담당자, 새마을금고 계열사인 엠캐피탈 자문위원 등에 근무 중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퇴직 공직자는 퇴직일로부터 3년 안에 재취업하는 경우 취업 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공직자윤리위원회가 퇴직 전 5년간 소속했던 기관과 취업 심사 대상 기관의 업무 간 밀접한 관련이 없다고 확인하면 재취업이 가능합니다.
 
공기관들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상근감사 등 임원을 선임하고 있다고 해명하고 있습니다만 실질적인 경쟁 과정이 없는 형식상의 절차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낙하산 인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힘든 만큼 임원 자격 요건을 엄격히 관리해 금융 경력이 전무한 인사를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현재는 금융사나 공기관 임원 자격 요건으로 전문성 등 적격 요건이 규정돼 있지 않고, 미성년이나 실형·파산 선고 등 결격 사유만 정하고 있습니다. 자격 요건을 명문화 하는 '낙하산 방지법'은 지난 19대 국회부터 21대 국회까지 발의와 폐기를 거듭하며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전문성이 떨어지는 정치·정부 인사가 낙하산으로 내려와도 법적으로 제지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며 "금융사지배구조법 개정 등을 통해 최고경영자 뿐만 아니라 임원의 최소 자격 요건에 대해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금융·경제 이력이 없는 정치인 등 비전문가들이 금융사와 공기관 상임이사로 내려오는 것을 막기 위해 임원 자격 요건 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사진은 국회의사당 앞 정지 표지판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