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AI의 Chat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은 설계될 때 사용자에게 유해하거나 비윤리적인 행동을 조장하지 않도록 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민주정의 시민들을 이 생성형 인공지능에 비유해보자. 한데 모인 일군의 사람들이 누군가의 일방적인 지배를 받지 않고 ‘서로 번갈아 지배’할 때 혹은 ‘모두가 모두를 지배’할 때 이를 민주정이라 부르자. 이러한 민주정을 위해서는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따라야 할 규칙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를 흔히 ‘헌법’이라고 부른다. 민주정이란 이렇게 제정한 규칙들을 사람들에게 ‘학습’시켜서 이에 따라서만 말과 행동의 출력값이 결정되어 나오도록 하는 일련의 상태로 모델링하여 이해할 수 있다.
이 모델링에 따르면, 한 시민이 민주정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인공지능의 ‘오작동’과 같다. 민주정의 이상(理想)은 애초에 반민주적 오작동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즉 대통령을 맡은 시민은 야당의 정치적 행동들이 맘에 안 든다는 이유로 비상계엄 같은 것을 선포하지 않는다. 그런 것이 아예 선택할 수 있는 수로서 고려조차도 될 수 없다. 물론 ‘우회’ 같은 방법으로 인공지능이 설계된 대로 행동하지 않게끔 하는 방법이 있듯이, 민주정 내의 오작동을 완전히 틀어막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일종의 집단행동인 민주정에서는, 누군가의 오작동이 또 다른 오작동으로 이어지지는 않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민주정의 시민들은 그가 군인이나 경찰로서 어떤 명령을 받았든지 간에 국회를 점거하거나 통제하고 국회의원을 체포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다. 마치 인공지능에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라고 하면 ‘그런 답변은 할 수 없습니다’라고만 대답을 출력하듯이, ‘국회를 점거하라’라는 명령을 받은 민주정의 병사는 ‘그런 명령은 민주정에 위배됩니다’라며 이를 행동에 옮기지 않는다. 또한 모든 시민들은 누군가의 오작동으로 민주정이 위협받을 때, 올바른 출력값, 즉 민주정의 제도와 기관을 보호하고 불법적인 폭력에 저항하는 집단행동에 나선다. 마치 국회에서 병력들의 출입을 몸으로 막은 보좌진들과 국회 앞에 자발적으로 모인 시위대처럼 말이다.
민주정의 가능성이 알려지지 않았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차단된 상황에서 민주정이 어떻게 세워지는지를 일반화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일단 민주정이 성립되고 나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민주정을 위한 규칙들을 잘 설계하는 일은 필수적이지만, 이것이 민주정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규칙은 그 자체로는 아무 힘이 없으며 그 규칙에 따르는 시민들에 의해서만 민주정은 현실적으로 지켜진다. 그렇게 되려면 모든 시민들은 이 규칙대로 잘 설계되어, 누가 안 보더라도 혹은 당장의 이익에 도움이 안 되더라도 민주정에 알맞은 행동들을 항상 출력값으로 내놓아야 한다.
국정원의 독대 보고를 받을 수도 있는데 안 받는 대통령, 위법한 계엄 회의에 사표를 쓴 고위 공직자, 자발적으로 국회를 지킨 시민들처럼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정이 (단지 선거의 유무가 아니라) 진정으로 무엇인지와 그것이 왜 좋은지를 아는 지혜.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실천할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이는 그러한 지혜와 용기를 갖춘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교육 규칙의 문제로 환원된다. 더 나아가 민주정이 지켜져야 한다는 확신과 시민들 사이의 신뢰가 필요하고 말이다. 12월 3일의 밤은 우리에게 무엇이 있었고, 또 무엇이 없었는지를 점검할 수 있는 시험대였다.
노경호 독일 본대학 철학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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