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유나기자] 자동차 업계가 유럽시장 확대 기대감에 후끈 달아올랐다.
7월1일부터 발효되는 한-EU 자유무역협정(FTA)로 수출 날개를 단 자동차업계에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한-EU FTA 발효는 자동차업계에 '기회의 땅'을 제공한다.
우수한 기술력, 서비스, 가격 등을 갖춘 양국의 우수 자동차업체들이 역량에 따라 서로 '주고 받으며' 자동차 산업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발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동차업계에서는 "크게 긍정적"이라며 앞으로의 유럽 자동차시장 판도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 완성차업계, 관세 '족쇄' 풀고 수출 '날개' 단다
EU 자동차시장은 170만대 규모로 전세계 수요의 25%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시장이다. 한국의 10배가 넘는 규모다.
지난 5월 한-EU FTA비준안 통과로 오는 7월부터 FTA가 발효되면 이렇게 큰 자동차 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돼 유럽 수출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시장에서 국내 완성차업체들은 62만1000대를 팔았다. 2008년에는 글로벌 경제위기로 차량 판매가 줄었지만, 그 뒤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증가추세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2009년 현지생산을 본격 시작함에 따라 수출과 유럽공장 현지생산이라는 투트랙으로 탄력적으로 운영해 온 덕분이기도 하다. 한-EU FTA가 발효되면 국내 완성차 판매량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허완 한국자동차공업협회 상무는 "예상 판매량을 수치화할 순 없지만 지금 추세보다는 속도가 붙어 판매량이 훨씬 더 증가할 것"이라며 "FTA 발효는 우리나라 완성차 업체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라고 말했다.
수출증가가 예상되는 것은 관세 철폐 때문이다. 유럽에 수출하는 배기량 1500cc 초과 승용차는 현재 10%인 관세가 3년간 단계적으로 내려가 2014년에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유럽에 수출되는 국산차의 가격이 10% 싸지는 셈이다.
현대차(005380) 싼타페, 쏘나타, K5 등도 가격이 인하된다.
관세 철폐로 인한 가격 인하는 곧 유럽시장에서의 가격경쟁력 우위를 확보로 이어진다. 이미 품질을 인정받은 국내 완성차들이 가격 부분에서까지 경쟁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가격경쟁력은 마케팅 전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편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관세만큼의 인하분을 마케팅 전략에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한 가격인하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출과 판매전략을 탄력적으로 활용해 한-EU FTA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럽에서는 폭스바겐, 르노, 피아트, PSA 등 세계 4대 자동차업체와 BMW, 벤츠 등 세계적인 차 생산업체가 시장의 64%를 장악하고 있다.
FTA가 발효되면 국내완성차는 이미 유럽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유럽차들의 강력한 라이벌로 떠오를 전망이다.
모닝, 마티즈, 쏘나타급 이상의 국내 완성차들과 현지생산하고 있는 i20, 씨드 등은 프랑스의 푸조, 이탈리아의 피에트에 이어 유럽에 진출해 있는 일본의 도요타와도 어깨를 나란히 할만큼 강력한 라이벌로 꼽히고 있다.
실제로 지난 FTA협상에서 이탈리아를 포함한 유럽국가들이 한국의 이런 가격, 품질경쟁력 때문에 자국의 자동차산업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에 반대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유럽시장이 경차, 소형차가 자리를 잘 잡고 있는 반면 중대형 차들은 아직 본격적으로 진출을 하지 못한 상태기 때문에 쏘나타 이상의 중대형차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다.
중대형 차 한 대를 파는 것이 소형차 여러 대를 파는 것보다 수익성 측면에서 더 유리하기도 하지만, 한국 완성차 업체들의 신기술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부품업계의 진출도 주목된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EU 자동차분야 수출액은 65억달러로 무역수지흑자 규모가 27억달러에 달했다. 이 중 완성차가 34억달러, 자동차부품이 31억달러를 차지했다.
단계적으로 관세가 철폐되는 완성차에 비해 부품의 경우 FTA발효 즉시 4.5% 관세가 철폐되기 때문에 부품시장에 대한 영향력이 더욱 커진다.
게다가 지난 일본의 대지진 사태에 따라 글로벌 완성차업체가 부품공급선을 한국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FTA 발효로 한국의 자동차부품 가격경쟁력이 향상되면 EU 완성차업체들의 국산 부품 구매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얘기다.
또 한국자동차업체의 유럽 현지공장 부품조달비용이 절감돼 완성차의 가격경쟁력이 제고되고, 자동차수출에 따른 AS용부품 수출도 더욱 증대된다.
자동차 수출 증가와 이에 따른 부품업체들의 지배력 강화가 '긍정의 도미노'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 수입차 국내 판매 13만대 돌파 예상.. 독일차 강세
국내시장에서도 수입차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한국수입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수입차 판매량은 4만2700대로 내수 점유율 6.5%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3만4318대가 팔리며 기록했던 점유율 5.5%보다 1%포인트 오른 것이다. 지난 3월에는 사상 최초로 월 1만대 이상 판매하며 점유율이 7.1%까지 치솟기도 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인기 차종인 벤츠 E클래스와 BMW 5시리즈가 꾸준히 인기 몰이를 하면서 점유율을 높인 것으로 분석된다.
7월 발효되는 한-EU FTA를 기점으로 업계 1위 BMW코리아를 비롯, 메르세데스-벤츠, 폴크스바겐 등 유럽 수입차 업체의 공세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수입차는 사상처음 연간 판매량이 10만대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는 수입자동차협회 회원사 물량만 집계된 것으로 비회원사까지 포함한다면 연간 판매량은 13만대를 훨씬 웃돌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수입차 판매 분야에서 돋보이는 것이 단연 독일 브랜드다. 수입차 시장 점유율 상위 5개 브랜드 중에서는 독일 브랜드가 4개를 차지했다.
BMW가 28.32%의 점유율 1위를 차지했으며, 메르세데스-벤츠(17.52%), 폴크스바겐(12.52%), 아우디(9.35%)가 각각 그 뒤를 이었다. 5위권 안 비유럽브랜드는 도요타자동차가 8.75%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수입차 업계는 올들어 BMW 9종을 포함 50여종 이상의 신차를 내놓고 가격인하 등 다양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벤츠와 볼보 등은 이미 가격을 인하한 상태다. 1위를 BMW에 내준 벤츠는 한-EU FTA 관세 인하분(약 1.4%)을 차량 가격에 적용하고 신형 C클래스를 출시하는 등 비교적 가격대가 낮은 고급차 위주로 공략에 나섰다.
폴크스바겐 역시 '골프'나 '제타'같은 연비 좋은 3000만원대 소형차 제품군을 내세워 수입차는 물론 국내 준대형 세단 수요까지 흡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달 출시한 ‘신형 제타’의 경우 출시 한달도 안 돼 500대 이상이 판매됐다.
유럽대형차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대형·고급 세단의 경우 수입차는 국산차에 비해 오히려 우위에 있을 정도다.
현재 국내에 판매되는 대형 세단은 현대차 제네시스, 에쿠스, 쌍용차 체어맨, 기아차 오피러스 등 4종에 불과하지만 같은 가격대나 크기에 선택할 수 있는 수입차의 경우 수십여 종에 달해 소비자의 선택 폭은 더 넓어지게 된다.
FTA 발효에 따른 관세 철폐와 가격 인하는 결국 소비자의 혜택으로 돌아간다.
박은석 수입자동차협회 차장은 "관세 철폐와 그에 따른 차 가격 인하는 소비자 입장에선 싼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면서 "관세장벽이 무너져 수치적인 세금 뿐만 아니라 수입조건이 완화돼 수입업체들이 반기고 있다"고 말했다.
◇ 자동차시장 판도변화 불가피..득실은?
한·EU FTA 발효의 이점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우리나라 국산차가 유럽에 진출 할 수 있는 기반이 넓어진다. 완성차는 물론 부품도 큰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된다.
또 국내시장에서 수입차가 대응모델 역할을 하게 된다. 현재 국내시장에서 현대기아차가 80%를 점유하고 있는 상황을 놓고 볼때 수입차가 이에 대한 대응모델이 되면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등 소비자의 선택권을 늘리고 자동차 문화 선진화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자동차 애프터마켓 시장의 후진적 개념을 선진형으로 끌어올리는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된다. 사실상 국내에는 중고차, 이륜차, 튜닝용 모터스포츠, 리사이클 등 후진적이거나 부정적인 개념들이 많은데 이들에 대한 인식전환과 시스템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FTA 발효의 영향에 대해 자동차업계는 아직 신중한 모습이다.
3~5년동안 관세가 단계적으로 철폐가 되기 때문에 영향과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때문에 섣부른 진단과 전망은 금물이라는 게 업계의 입장이기도 하다.
또 수입차 증가로 국내시장을 뺏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자동차업계는 내수 점유율이 높아지는 만큼 국내시장에서 국산차들의 자리가 줄어들 수 있는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이다.
김필수 교수는 이에 대해 "동전의 양면과 같은 문제여서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며 "앞으로 국산차와 수입차의 명확한 개념이 없어지고 국민들도 냉정하게 품질과 가격, AS 등 3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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