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파업해도 되는 연봉은 얼마?
2011-06-29 13:51:47 2011-07-12 17:55:37
[뉴스토마토 황인표기자] 우리나라 한 대학교수가 미국 시카고에서 유학했을 때의 일이다. 교수 월급보다 길 건너편 철강 회사의 직원 월급이 더 많은 사실을 우연히 알고,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다시 곰곰이 따져보니 상식적으로 그게 당연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노동자가 열심히 일해 좋은 성과를 내면 그만큼 보상 받는 게 문제될 리 없다는 것이다. 대학교수가 철강회사 노동자보다 꼭 더 많은 월급을 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 
 
얼마전 현대기아차 하청 중소업체인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자 언론에서 '이 회사 직원 평균 연봉은 7000만원'이라는 기사를 냈다.  '연봉을 많이 받는 노동자가 무슨 파업이냐'는 비아냥이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도 재빨리 이 기사를 인용해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비난했다.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부자 노동자의 파업 때문에 엄청난 수출 차질이 벌어지고 있다'는 레퍼토리를 만들어냈다.  
 
지난 27일 파업에 돌입한 SC제일은행 노조를 두고 몇몇 언론들이 또다시 '뻔한' 레퍼토리에 열중하고 있다. '평균 연봉 8500만원을 받는 은행원이 파업에 돌입했다‘는 보도다.
 
'고액 연봉을 받는 노동자가 무슨 파업이냐'던 유성기업 노조파업 때와 똑같은 취지다.  연봉 7000~8500만원을 받지 못하는 봉급쟁이 서민들의 질투심을 자극해 노동자 파업에 대한 비판 감정을 불러일으키려는 여론플레이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연봉이 7000만원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지기도 했지만, 문제는 연봉이 7000만원이냐 8500만원이냐가 아니다. 이 정도 연봉을 받는 노동자는 파업해서는 안되는 것인지, 안된다면 도대체 파업을 해도 괜찮은 연봉 수준은 얼마인지 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연봉이 '파업 비판'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연봉이 높다고 파업해서 안된다는 주장은 법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다. 단지 '질투심'에 근거한 감정적 주장이다.     
 
직원들에게 '8500만원 연봉'을 주는 이 은행은 매년 수천억원의 흑자를 냈다.  물론, 다른 은행에 비해 이 은행의 수익성이 낮은 건 사실이다. 작년에는 순익이 25%나 줄기도 했다. 하지만 이 은행이 스스로 밝혔듯 “전년도에 있었던 일회성 이익이 소멸됐고 투자 상품의 손실” 때문에 순익이 줄었다. 어디에도 직원들 연봉을 많이 줘서 순익이 줄었다는 말은 없다. 경영을 제대로 못한 임원 연봉을 깎아야 할 판이다. 
 
핵심도 비껴갔다. 이 은행 노조가 파업을 벌이는 이유는 성과급제 도입으로 인한 구조조정 가능성과 임금 하락에 대한 염려 때문이다. 지금보다 더 많은 연봉을 달라는 이유가 아니다. 
 
대통령까지도 사실을 잘못 말한 유성기업 사례에서 보듯 우리 사회 저변에는 ‘노동자는 고액 연봉을 받으면 안 되고 고액연봉을 받으면 파업을 벌여도 안 된다’는 논리가 깔려있다. 
 
그러나 시카고 철강 노동자들처럼 열심히 일해 회사가 성장하는 만큼 직원들이 보답 받는 건 '건전한 자본주의' 정신에 가깝다. 연봉을 많이 받든 적게 받든 다른 이유로 파업을 벌일 수 있다. 파업 정당성이나 합법성, 합리성을 따질 일이지, 파업 자체를 비난할 일은 아니다.
 
한국은 노동쟁의 파업권이 법적으로 보장되는 나라다. 연봉과는 상관없이 근로조건 개선과 고용 안정을 위해 파업에 나설 수 있다. ‘고액 연봉자들의 파업은 문제가 있다‘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파업을 벌여도 되는 적절 연봉 수준을 묻고 싶다.
 
뉴스토마토 황인표 기자 hwangip@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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