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명정선기자] 한국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지급준비율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에 돌입했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은행들이 고객으로부터 받은 예금 자산 중 일부를 무이자로 한국은행에 맡겨야 하는 지급준비금을 늘려 급격한 통화팽창기에 유동성 흡수로 물가를 조절하겠다는 구상이다.
전문가들은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않고 유동성을 흡수할 경우 결국엔 다시 유동성을 공급해야 하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 물가보다 경기 우려 커.."금리카드는 어렵다 "
한은 관계자는 9일 " 중•장기 물가정책 수단인 기준금리 이 에 중•단기 차원에서 신속하게 물가를 억제할 수 있는 정책수단을 시행할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은 이미 지난해 말 ‘2012년 통화신용정책 운용방향’에서도 “통화정책 및 금융안정 수단으로서 지급준비금 제도의 활용 가능성과 운용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물가만을 고려해 금리인상 카드를 꺼내기는 쉽지 않아 지급준비율을 높이겠다는 얘기다.
한은은 주로 중•단기 정책수단으로 지급준비율 상향, 총 한도대출 축소, 한은이 지원한 각종 펀드 자금회수 등의 방법을 활용한다.
이들 조치가 시행되면 시중 유동성을 인위적으로 흡수해 통화량을 줄이므로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고도 물가상승 억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한은은 보고 있다.
전문가들도 금리인상 카드를 꺼내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데는 이견이 없다.
오창섭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물가부담이 높은 상황이지만 경기 하강압력이 높아 기준금리를 건드릴 수도 없다" 며 "금리인상이란 거시정책 수단 대신에 지급준비율 등 미시적 정책수단을 대안으로 절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장에 널리 퍼져있는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을 사전에 차단하고 물가안정 의지를 보여주겠다는 의도도 깔렸다는 분석이다.
◇ 실효성 떨어지고 대출 풍선효과 등 부작용 '우려'
그러나 한은이 지급준비율 인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통화정책 수단으로 지급준비율을 조절하는 중국의 경우 유동성 자체가 정부가 정책적으로 결정하는 관치금융 시스템" 이라며 "우리 금융시장은 상황이 전혀 달라 지준율 인상 만으로 유동성을 조절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1998년 물가안정목표제가 도입돼 금리 중심의 통화정책으로 전환하면서 지급준비율을 통한 유동성 조절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한은이 이번에 지준율을 올리면 2006년 평균 지준율을 3.0%에서 3.8%을 올린 뒤 6년만이다.
박종연 우리투자증권 연구원도 "국내에서 통화정책 수단의 중심은 기준금리며, 기준금리 인상 없이 유동성을 흡수하게 되면 높아지는 콜금리를 기준금리에 맞추기 위해 다시 유동성을 공급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한다"고 우려했다.
지급준비율을 높일 경우 시중은행의 신용창출능력이 줄어들어 어려운 가계나 중소기업의 대출이 더 힘들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전소영 한양증권 연구원은 "현재 가계대출과 중소기업대출이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자리하고 있는 상황에서 1금융권이 대출을 줄이면 2금융권, 카드, 보험사 등으로 대출수요자들이 몰리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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