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민규·박수연기자] 중소 유통업체들이 대기업 계열 소모성자재구매대행사(MRO) 공세에 줄줄이 파산하고 있는 가운데 정작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중앙회 등 관련 기관들이 '전시행정'에만 매몰돼 있다는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경제민주화의 거센 바람 속에서도 대기업이 운영하는 MRO 업체들의 시장 잠식이 심화되면서 서울 구로, 영등포, 청계천 등 대표적인 공구유통상가에서 문을 닫는 업체들이 줄을 잇는 상황이고, 특히 현지 영세업체들에게 'LG서브원'이라는 이름은 '포식자'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다.
정부는 동반성장을 기치로 지난 19일 소상공인 정책자금 규모를 현행 5050억원 수준에서 7500억원으로 확대하고, 1조원에 육박하는 '소상공인 진흥계정'을 신설하는 내용의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소상공인들에게 실질적으로 돌아가는 지원은 사실상 전무하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자금 규모로만 보면 1조원 이상의 막대한 금액이 중소상인에게 직접 지원되는 것 같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 지원자금의 상당 부분이 규모가 큰 중견기업에게 우선 배분되는데다, 정책금융의 경우 소상공인은 지원자격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때문에 대출 등 직접적 수혜로 이어지는 경우는 '하늘에 별따기'라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서울 구로공구유통상가의 한 관계자는 "연간 정책자금 지원은 중기청 산하 소상공인진흥원이 주최하는 지회순회교육 참가비로 8000원을 받는 것 외에 전무하다"며 "그마저도 수업을 수료하는 조건으로 수령 가능하며, 80명 인원을 채웠을 경우에만 개최가 되는 대표적인 전시행정"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중기청이 추진하고 있는 대·중소기업 협업 공동브랜드 정책도 기업 및 업종별로 특색을 반영하지 않아 실현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평가다. 또 지난 24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정책금융 확대정책 역시 중소 업체들에겐 '먼 발치의 떡'일 뿐이다. 해당자격 요건의 장벽이 워낙 높아 실질적 지원으로 이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폐업하는 업체들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구로기계공구상가 정경.
여기에다 각 지자체가 자금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영세 소상공인들을 위해 '소상공인 창업 및 경영안정자금' 대책을 마련했지만, 이 또한 사채와 동일한 수수료 납입 방식과 높은 이자율 때문에 유명무실화했다는 지적이다.
보증재단의 보증서가 발급됨에도 정책자금 대출과정에서 별도의 서류를 다시 제출해야 하는 행정절차상 이중 장벽이 있을뿐만 아니라, 일부 지역의 경우 사채와 마찬가지로 보증수수료를 선입금으로 처리해 영세사업자 입장에선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이자율도 일반대출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또다른 영세업체 대표는 "보증재단을 통한 정책자금 대출이 시중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것보다 훨씬 더 까다롭다"면서 "보증수수료 또한 일시불로 선납시키는 바람에 자칫하면 빚만 더 지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중 은행권 대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소기업 대출금리는 5.22%로,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대출금리는 이와 비슷한 3.5~6%정도다. 하지만 이마저도 문턱이 너무 높아 진입 자체가 버겁다.
소상공인이 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는 창구는 거의 막혔다고 보면 된다는 것이 금융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신용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세금을 기준으로 하는데, 소득수준이 낮은 소상공인이 이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이유로 중소업계에서는 영세업체의 사업여건 개선과 내수시장 확보를 위한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금 같은 '보여주기식' 지원만으로는 대·중소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간의 '자금 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 현상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최승재 소상공인단체연합회 사무총장은 "소상공인을 상대로 한 고금리 정책도 중소기업난 중 하나"라며 "소상공인들이 피부로 체감하고 느낄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어 "실제 상공인들이 협회에 가장 많이 건의하는 점은 업종을 전환할 때 지원책을 꾸준히 마련해주고, 일반 직장인들에 비해 사회안전망이 약한 소상공인들에게 보다 융통성 있는 지원책을 강구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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