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철강업계, '불황'보다 '정부'가 더 서럽다
2012-11-15 18:05:10 2012-11-15 18:18:20
[뉴스토마토 이보라기자] 철강업계가 대내외 경기침체 탓에 수익성 악화로 고전하는 가운데 근심거리가 또 하나 늘었다. '철강산업명품화 전략'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유혹하던 지식경제부의 계획이 좌초하면서다. 이산화탄소를 물로 바꿔줄 수소환원제철 기술개발 사업의 예산 확보는 2년째 표류하면서 사실상 백지화 됐다는 게 정부 안팎의 솔직한 기류다. (☞철강 미래기술, 눈치보는 정부 탓에 예산만 2년째 표류)
 
국회예산처가 내놓은 '2013년 예산안 분석'에 따르면 수소환원제철 기술개발 사업의 경우, 포스코 등 특정 대기업에 성과가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국가 차원의 예산 지원 필요성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대기업은 국가가 굳이 지원하지 않아도 연구개발 여력이 충분하니 알아서 하란 뜻일 테다. 국회예산처의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정부가 이번에는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 같다.
 
정부의 무능과 방조, 실기, 또는 의도로 인해 대기업에게 직간접적 혜택이 돌아가 중소기업과 서민들이 피눈물을 흘린 정책이 어디 하나 둘인가. 대기업의 무분별한 골목상권 유린이 그랬고, MRO(소모성 자재구매대행) 논란 또한 정부가 손을 놓은 것으로부터 기인했다. 경제민주화가 태동하고, 재벌개혁이 대한민국을 관통한 원천에는 현 정부의 '분명한' 실정이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미래 세대를 위한 신기술 R&D(기술개발) 예산 배정만은 원칙을 가지고 추진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를 낳은 정부가 오히려 경제민주화 눈치를 보며 스스로의 약속을 거둬 들이고 있다. 원칙도, 약속도 없으면서 신뢰는 무너졌다. 기간산업인 철강 업계의 희망은 무참하게 꺾여 버렸다.
 
철강 업계에게 있어 온실가스 저감기술 보유 여부는 생존이 달린 문제다. 대표적인 온실가스 배출 산업으로 꼽히는 철강 기업들이 너도나도 이 기술 개발에 뛰어든 직접적이고 분명한 이유다. 지식경제부가 당초 추진했던 'CO₂ free 차세대 제철기술 개발사업'은 철강기술, 설계, 엔지니어링 등 종합적인 역량이 필요한 분야로, 기술개발에 따른 혜택 또한 전 산업계가 공유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대형기업 한 두개가 나서서 될 일이 아니다.
 
신기술 개발을 위한 국책사업은 자체적으로 기술개발에 착수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에게는 새로운 기술을 접하고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국가 전체적인 기술수준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정부가 기술개발을 위한 '판'을 깔아줘야 한다는 얘기다. 온실가스 감축은 되돌릴 수없는 시대적 과제다. 비즈니스와 (자연)환경은 따로 떼어내서 생각할 수 없다. 결국 차기 정부가 들어서야 예산 배정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철강업계의 깊은 한숨이 더욱 씁쓸하게 전해진 하루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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