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호접몽(胡蝶夢)은 중국의 사상가 장자의 경험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장자가 어느 날 나비가 되는 꿈을 꿨는데 꿈이 너무 생생해서 자신이 나비가 된 건지, 나비가 장자가 된 건지 헷갈렸다는 겁니다.
사실 기자만큼 호접몽과 비슷한 직업도 없는 것 같습니다. 출입처 때문입니다. 선배 기자들은 한 출입처를 오래 다니다보면 저도 모르게 거기에 동화된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기업을 오래 취재한 기자는 자기도 모르게 업계 입장을 대변하게 되고 관가에 자주 출입한 기자는 공무원인 양 착각하게 된다는 거죠. '기자인지 출입처 관계자인지' 헷갈린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만큼 그쪽 취재원을 많이 알고 내부 사정을 자세히 꿰고 있다는 뜻입니다. 출입처에 대한 애정이 많다는 증거기도 하고요.
세종청사의 기자들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우선 세종시가 워낙 좁다 보니 기자와 공무원은 서울이나 과천청사에서 일할 때보다 얼굴 볼 일이 더 많아졌습니다. 또 서로 객지살이와 장거리 출퇴근의 고생을 잘 알아 격려와 위로도 자주 나눕니다.
기자로서도 교통이나 문화적 여건이 취약한 세종시로 내려갔다는 건 그만큼 출입처 관리와 취재를 위해 고생을 자처했다는 뜻입니다. 출입처를 향한 애정이 크다는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시작부터 삐걱댄 새 정부지만 세종 발(發) 기사들은 정부에 대한 일방적 비판보다 현 상황에 대한 이해와 비판, 기대와 대안을 함께 실은 내용이 많았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만 해도 밖에서는 "위원장 인선이 늦다", "경제민주화가 표류했다"며 공정위를 솜방망이에 비유했지만, 출입기자들은 앞으로는 기대할만하다는 내용의 기사를 많이 썼습니다. 이런 사정은 기획재정부나 다른 부처라고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쯤되면 기자와 공무원의 관계가 삐딱하게 보일 수 있네요. 그러나 기자가 공무원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는 건 모두 공익을 위한다는 전제로 서로 소통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일 겁니다. 기자가 정부를 비판해도 좋은 건 부각해주고 대안을 함께 다루려는 것도 이런 뜻입니다.
그렇다고 기자가 언제나 호접몽을 꾸는 건 아니더군요.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만 봐도 그렇습니다. 이번에 박 대통령은 미국과 에너지기술 협약을 맺고 보잉社 등의 국내 투자를 유치했지만 아무도 이를 주목해주지 않습니다.
사실 세종 발 기사에 비교해도 그동안 박 대통령과 청와대에 대한 기사들은 매우 비판적입니다. 이번 정부를 두고 "역대 최약체 임기 초반 정부"라는 비아냥이 공공연히 나왔을 정도입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청와대의 불통 문제가 큽니다.
국민과 정치권의 여론을 무시한 불통 인사는 6명의 장관 후보자를 낙마시켰습니다. 이번 방미의 최대 오점인 윤창중 전 대변인도 불통 인사가 만든 참사입니다. 윤 전 대변인은 인수위 대변인 때부터 안하무인 언행으로 언론과 마찰을 빚었습니다.
사정이 이런데 어느 기자가 대통령과 청와대를 이해하고 '내가 기자인지 청와대 관계자인지' 헷갈릴 수 있을까요. 대통령과 청와대는 하루빨리 기자들을 헷갈리게 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비결은 공익을 중시하고 여론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겁니다.
세종청사의 공무원들도 마음을 놔서는 안 됩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벌써 100일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연애할 때 상대의 잘못을 눈감아 줄 만큼 콩깍지가 씐 기간이 석달이라고 했던가요. 기자와 공무원의 콩깍지도 슬슬 벗겨질 때가 됐습니다.
특히 이제 각 부처가 본격적으로 정책을 펼치기 시작하면서 여기저기서 문제점들이 나타날 때입니다. 기자들이 '실효성 문제'를 거론하며 정책을 점검하고 나설 것이고, 공무원이 혹시라도 실언이나 실책이라도 하면 집중 포화를 날릴 것입니다.
공무원, 특히 높으신 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럴 때 무대응으로 일관하거나 잡아떼면 나중에 뒷감당이 안 됩니다. 잘못이 있다면 인정하고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합니다. 쪼잔하게 굴지 말고 통 크게 사과하고 다음부터 잘 하면 되거든요. 국민만 보며.
공직사회 특유의 책임전가, 발뺌도 말아야 합니다. 언론이 오해한 건 적극 해명하고 더 소통하면서 처지를 알려야 합니다. 기자도 사람이라 인정에 약합니다. 서로 힘든 처지지만 옳은 일을 위해 애쓴다고 공감할 때가 바로 기자에게 호접몽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저도 기자라고 지나치게 공무원을 가르치는 이야기를 했나 봅니다. 마지막으로 기자에게도 한 마디 하겠습니다. '기자인지 출입처 관계자인지' 헷갈릴랑말랑한 순간을 넘어서 정말 자기가 출입처 관계자인 양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
특히 자본과 권력이 모인 곳을 출입하는 기자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그러고 보니 윤창중 전 대변인도 기자 출신이죠. 이 사람이야말로 젊어서부터 아예 자기가 출입처(정치권) 관계자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이쯤되면 꿈도 그냥 꿈이 아니라 개꿈이네요. 퉷.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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