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정부가 이번 일자리 대책의 전면에 내세운 ‘시간제 일자리’는 조건만 완벽하면 노동자에게 꽤 매력적인 일자리가 될 수도 있다.
동등한 조건이 전제된 위에서 노동형태를 자유롭게 골라 쓸 수 있다는 건 선택권이 노동자에게 우선한다는 걸 의미한다.
문제는 바로 그 선택권에 있다. ‘시간제 일자리’에 노동계가 공포감을 느끼는 건 이 같은 권한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시간제 일자리의 노동조건만 “반듯하게” 잡아줘도 노동계는 얼마든지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번 대책의 성공변수는 시간제 확산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가 아니라 시간제 고용질을 담보하는 정책수단에 달렸다.
◇‘시간제 일자리’는 노동유연화인가, 잡셰어링인가
아래 표를 보면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일자리 수준이 어떤지 평가해볼 수 있다.
통계청이 지난달 23일 발표한 '2013년 3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로, 정규직 노동자가 한달 평균 253만원을 받을 때 비정규직 노동자는 159만원을 받고 일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비정규직 노동자 가운데 시간제 노동자는 조건이 제일 열악해서 한달에 65만원을 받고 있을 뿐이다. 정규직 노동자의 4분의 1에 불과한 액수다.
물론 시간제로 일을 하면 전일제 노동자와 전체 임금 액수가 같을 순 없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다시 아래 두개 표를 보면 시간제 노동자의 현실은 여전히 우울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퇴직금, 상여금, 시간외수당, 유급휴일 등 복지부분 전반의 수혜에서 정규직 보다 절반의 혜택만 누리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가운데 시간제 노동자는 이 비율이 10% 전후에 그치는 등 복지수혜 면에서 가장 열악한 조건에 놓여 있는 게 확인된다.
사회보험 가입률도 마찬가지여서 전체 임금노동자 평균이 60~70%를 기록하고 있지만 시간제는 이 비율이 10%대로 뚝 떨어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시간제 노동자의 60% 이상은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고 노동현장에서 일하고 있다.(아래 표 참조)
고용안정이 이처럼 담보되지 않은 상태라면 노동계가 시간제 일자리에 대해 느끼는 공포감은 결코 과장된 게 아니다.
◇관건은 기업의 양보 끌어내기..정부 대책은?
박근혜정부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대대적으로 확산해 고용률을 늘리고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시간제 일자리 확산으로 노동시간 자체가 줄어들면 일과 가정이 양립하는 문화도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다.
그러나 이같은 대책은 새로운 게 아니다. 지난 이명박정부도 지난 2011년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란 이름으로 같은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그때도 전체 노동시간은 줄이되 노동조건을 전일제와 차별 없이 부여하는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공공기관에서 먼저 시작한 뒤 민간으로 확대시킨다는 정책 순서도 똑같다.
그러나 이는 계획대로 구현되지 않았고 위의 표에서 보듯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만 벌려놓았다.
결국 관건은 고용안정과 고용조건을 제고하기 위한 정부의 실천력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재계의 양보를 적극 끌어내고 이를 강제하는 방식이 아니라면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는 말뿐인 대책에 그칠 것이란 우려다.
실제 박근혜정부가 이번 로드맵을 만들 때 참고한 것으로 보이는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은 재계가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고용안정성을 보장한다는 조건이 있었기에 노동계의 양보를 끌어낼 수 있었다는 평가다.
김수현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원은 “네덜란드의 경우 전일제와 시간제의 차이가 거의 없다. 임금은 물론 고용보험, 휴가 등 모든 면에서 차별 자체가 금지돼 있고 사회적으로 안정된 복지체제를 갖추고 있었다는 점도 국내와 사정이 많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 연구원은 “이명박정부가 공공무분에서 시간제 일자리를 늘려 고용률을 높이긴 했다”며 “어쨌든 눈에 보이는 실업률이 줄어드니까 고용성과 자체가 나아진 것으로 보이는 효과는 있었지만 실제 고용된 공공부문 시간제 노동자는 정규직과 하는 일 자체가 달랐다. 이번에도 전시성 행정에 그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자료제공: 새사연>
◇네덜란드의 성공..이명박의 실패
정부가 말한 대로 국내현실에서 고용률을 끌어올리는 건 결국 패러다임 변화를 수반하는 문제다.
시간제 확산이 고용질 악화로 곧장 이어질 것이라는 일각의 비판은 무책임하지만 시간제 노동의 고용질을을 제고하는 방법론이 충분치 않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정부는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의 해법으로 시간제 일자리를 꼽았지만 시간제 일자리가 장기적 일자리로 쓸모 있는가 하는 점 역시 아직은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김 연구원은 “여성의 경우 일을 쉬게 되는 게 문제라기보다 경력 단절 뒤 정규직을 구하지 못하는 게 지금의 문제”이고 “비정규직 문제는 지금 있는 법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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