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박근혜 정부 첫 세제개편의 뚜껑이 열렸다. 5년간 복지공약 등을 이행하기 위해 최소 135조원이 필요한 상황이라 획기적인 세수확보 대책이 필요하지만, 모험보다는 안정을 택했다.
당초 공약가계부에서 135조원의 공약재원 중 48조원을 국세수입에서 충당하기로 했지만, 이번 세제개편으로 더 거둬들일 수 있는 세수는 2조4900억원에 불과하다.
비과세·감면 정비와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박근혜 정부의 두 가지 조세정책 축을 기준으로 이른바 직접적인 증세 없는 세원확충을 시도했지만 눈에 띄는 증세가 없었던 만큼 세원확충도 없었다.
소득공제를 축소하는 등 비교적 세금징수가 쉬운 근로자들의 세금에 주로 손을 댄 반면, 비과세·감면 중에서도 덩어리가 큰 기업에 대한 세제지원은 연구개발(R&D) 세제지원 정도를 조금 조정했을뿐 거의 손을 대지 못했다.
오히려 중소기업 가업상속공제를 중견기업에까지 확대하고, 경제민주화와 공정세정의 일환으로 출발한 기업의 일감몰아주기 과세제도는 1년전보다 더 뒷걸음쳤다.
일자리 창출지원이라는 명분으로 비정규직 시간제 일자리창출에도 세제지원을 늘리는 등 고용율 70%달성이라는 국정과제를 채우기 위한 세제지원도 생겨났다.
역대정부가 망설였던 종교인 과세와 공무원 직급보조비에 대한 과세, 부농에 대한 과세를 담은 것은 눈에 띄지만 이들 항목에서의 세수효과는 사실상 손에 잡히지 않는 수준이어서 공약가계부에 뜷린 구멍은 메울 방도가 없는 상황이다.
8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3년 세법개정안에 따른 세수효과는 총 2조4900억원이다.
근로자들의 소득공제제도의 세액공제 전환으로만 1조3000억원의 세수입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됐다. 소득공제제도 개편으로 연 소득 3450만원 이상의 근로자는 내년부터 세금부담이 종전보다 늘어난다.
반대로 상대적인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지원이 늘어난다. 가족 합산소득이 2500만원 이하인 경우 지급되는 근로장려금은 자녀가 없는 경우에도 더 받을 수 있도록 했고, 부양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자녀장려세제(CTC)를 새로 도입해 지원해주기로 했다.
이석준 기획재정부 제2차관은 "근로소득세는 고소득자 세부담이 늘어난다. 늘어난 세부담에 플러스 알파를 해서 4000만원 이하의 저소득층에 전액 쓰이게 된다"면서 "세부담 형평성이 크게 제고되는 방향이다. 고소득자일수록 세부담이 많이 늘어나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가 판단한 중위소득, 중산층의 기준이 실제 근로자들의 체감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1550만명의 근로자 중 세금을 내지 않는 과세미달자를 제외하면 세금을 내는 근로자는 990만명 정도인데 이번에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세부담이 늘게 되는 근로자는 이 중 절반에 가까운 400만명에 이른다. 정부의 주장과는 다르게 사실상 중서민층 근로자들도 세금부담이 늘어나는 것이다.
홍기용 한국납세자연합회 회장(인천대 교수)은 "전체적으로 근로자중심으로 세금을 걷는 쪽으로 세제개편이 진행됐다"면서 "400만명 정도의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게 되는데 이런 것이 과연 그렇게 급한 일인지는 의문이다. 지하경제 양성화에 더 힘을 쏟거나 과세미달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세금을 내도록 하고 지원할 것은 하는 것이 더 필요한 것 아닌가 생각된다"고 지적했다.
정부 집권 첫해에 정책추진력이 가장 강한 점을 감안하면 이번 세제개편은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유리알 지갑이라고 불릴만큼 사실상 투명하게 관리되고 있는 근로자들에게서 그리 많지 않은 세수를 확보해 서민지원책으로 생색을 냈기 때문이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비과세·감면 정비로 지금까지 받던 혜택이 일부 줄어들게 된 분들은 이번 세법개정안을 지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면서도 "서민과 중산층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면서 비과세·감면 정비나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통해 재원을 확보해야 하는 정부의 고충과 어려움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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