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양지윤·최병호기자] 매년 여름철이면 전력대란을 막기 위한 전 국가적 캠페인이 이젠 일상화됐다. 그러나 해가 거듭될수록 상황은 더 나빠지고 절전의 한계치를 경험한 국민들은 찜통더위 속에서 고통을 언제까지고 감내하는 현실이 답답할 뿐이다. 문제의 핵심은 정부의 전력정책의 실패, 전력공급체계 자체의 모순 등에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뉴스토마토는 국가의 전력시스템 전반을 짚어보고 `전력대란 고질병`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진단해보고자 한다.[편집자]
연이은 무더위 속에 온 나라가 절전에 나섰지만 전력난은 좀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전력위기의 원인으로 국민의 전력낭비를 지목했지만, 국민은 정작 정부의 전력정책이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업계 관계자들은 매년 전력난이 반복된다면 전력수요 예측 실패 등 정부의 '전력셈법'이 애초에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가 쥐어짜기식 절전을 강요하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전력정책을 재점검하고 판을 새로 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
정부의 가장 큰 전력셈법 모순은 전력수요 예측이다. 정부는 2002년부터 2년 단위로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미래의 전력수요를 예측해 그에 따라 발전설비용량을 결정한다. 하지만 수요예측이 처음부터 빗나가 공급이 수요를 지탱하지 못하게 됐다.
◇"전력수요 예측 실패가 가장 큰 원인"
22일 에너지관리공단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보면 문 열고 냉방영업 등 전력낭비 때문에 전력난이 온 것처럼 보이지만 블랙아웃이 왔던 2011년 9월15일부터 따져도 정부의 전력수급 정책에 문제가 있다"며 "전력수요 예측 실패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가 2002년부터 마련한 전력수급기본계획들을 보면, 정부는 전력수요를 연평균 2.5%~5%대로 예측했다. 그러나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연평균 전기 소비증가율은 7%대를 기록해 정부 예측과 실제 수요가 2배 넘게 차이를 보였다.
◇연도별 수요예측과 최대 전력수요 추이(자료제공=산업통상자원부, 전력거래소)
특히 블랙아웃이 닥쳤던 2011년 당시 정부의 전력수요 예측치는 6650만㎾였지만 실수요는 7300만㎾를 기록했다. 지난해도 정부는 수요를 6700만㎾로 내다봤지만 실제는 7600만㎾나 됐다. 예측과 실제의 차인 900만㎾는 원자력발전소 7기의 발전량에 맞먹는다.
에너지관리공단 관계자는 "정부의 수요예측에는 인구증가와 기온상승, 전기제품 수요증가 등이 전혀 반영 안 됐다"며 "발전소를 짓는데 평균 5년이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요즘 발전용량이 부족한 것은 이미 기본계획을 할 때 다 예견된 일"이라고 비판했다.
두 번째 전력셈법 모순은 전기요금이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국내 전기요금은 원가에 비해서는 물론 석유 연료비보다도 낮고 해외 선진국과 비교하면 더 낮다"며 "턱없이 싼 전기요금이 가정과 공장할 것 없이 전기를 펑펑 쓰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한전 자료를 보면 2012년 기준 국내 주택용과 산업용 전기요금의 원가회수율은 각 92.8%, 89.4%였다. 전기 100원을 팔면 한전은 90원만 얻는 셈이다. 단위열량당 가격도 전기는 1030.7달러지만 등유는 1696.0달러로, 조금이라도 싼 전기를 쓰게 된 구조다.
◇주요 국가별 1인당 전력소비량(2012년 기준)(자료제공=한국전력)
이처럼 원가 대비 가격 자체가 워낙 낮고 다른 연료에 비해 상대가격까지 저렴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1인당 연간 전기소비량은 2012년 기준 9197㎾h에 달했다. 이는 일본(7868㎾h)은 물론 OECD 평균(7617㎾h)에 비해 훨씬 높다.
그럼 정부는 왜 이렇게 전기요금을 싸게 책정했을까. 김창섭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1970년대 오일쇼크 후 석유 중심의 에너지구조에서 벗어나려고 석유값은 높이되 전기요금은 일부러 억제했는데 지금은 이게 발목을 잡았다"고 분석했다.
◇오일쇼크 막기위해 확 낮춘 전기요금이 `발목`..구조적 모순 극복해야
김 교수는 이어 "우리나라는 싸고 안정적인 전력기반을 정착시켰지만 값싼 전기요금 덕에 다른 나라보다 전력 소비율이 너무 높다"며 "너무 싼 전기료는 전력당국의 재무건전성을 해치고 에너지구조 변화 등에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요구한다"고 경고했다.
정부가 한전의 전력독점을 깨고 전기를 더 싸게 공급한다며 도입한 민간발전사 전력판매제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 기대와 달리 민간은 한국중부발전 등 5개 발전자회사보다 전력은 적게 생산하면서 판매수익은 더 많이 올리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원욱 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정부가 민간발전사의 전력판매를 도입한 2001년부터 2012년까지 발전자회사의 총 전력판매량과 판매가격은 216만5162㎿와 153조5984억원으로 집계됐다.
반면 포스코에너지와 GS EPS 등 민간발전사는 12만8769㎿를 판매하고 15조4637억원을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이 한전에 판 전력량은 전체 전력의 3.5%지만 판매금액 점유율은 6.9%로 판매전력 대비 2배의 수익을 올린 셈이다.
판매단가도 발전자회사는 연평균 ㎾h당 71원이었지만 민간은 120원이으로 연평균 가격 변화율과 판매량을 비교하면 발전자회사가 그동안 190.3%의 수익을 올리는 동안 민간의 수익율은 무려 7710.9%나 됐다.
◇발전사별 전력 판매단가 추이(2012년 기준)(자료제공=이원욱 민주당 의원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전력구조 선진화를 빌미로 민간발전회사의 이윤만 챙겨줬다고 지적했다. 민간발전사의 전력공급 비중이 늘면 전기의 공공재 성격은 사라지는 대신 민간이 공급을 줄이거나 가격 담합이라도 하면 피해는 국민이 입는다는 것이다.
에너지시민연대 관계자는 "민간발전소 비중 확대는 전기요금 인상, 전력수급 불안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지금처럼 전기요금 적자는 한전이 책임지고, 이윤은 발전사가 챙기는 구조는 국민 세금을 민간발전사에게 바치는 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력수요 예측 바로잡고 장기적 관점의 에너지정책 재수립해야
이에 따라 업계 전문가들은 정부의 전력셈법 모순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우선 정확한 전력수요 예측에 따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에너지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에너지관리공단 관계자는 "전력수요 예측이 제대로 안돼 매년 동하계 절전운동과 민간발전기 가동, 전력수급 관리에만 1조원이 든다"며 "정부는 전력 수요예측이 잘못됐다는 지적을 귀담아듣고 정확한 통계를 바탕으로 한 전력수급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원자력발전소 가동현황(22일 기준)(자료제공=한국수력원자력)
전기요금도 인상 가능성을 염두에 둔 요금체계 개편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한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실장은 "전기요금 인상이 소비자에 손해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경기 활성화와 에너지의 효율적 이용을 통한 소비자 편익 제고를 위해서는 요금 개정이 필요하다"며 "소비자가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원가에 접근시켜 사회적 비용이 포함된 가격을 결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싼 전기를 공급하기는커녕 전력난 때 수익만 챙겨가는 민간발전사에 대한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전력당국인 한전은 적자인데 민간은 판매단가를 높여가며 수익을 얻는 불합리한 구조는 정책적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국민의 세금만 낭비하는 모순을 반복하고 있다.
전국전력노동조합 관계자는 "지금의 민간발전사 전력판매제는 사실상 정부가 민간발전사에 수 천억원의 특혜를 주는 셈"이라며 "국민에 전기를 더 싸게 공급하겠다면서 민간발전사를 들여 놓고도 매번 전력대란을 겪는다면 전력공급 체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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