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주식시장의 ‘큰 손’인 국민연금공단이 주식 투자를 크게 늘리며 투자기업의 지분을 확대하고 있지만, 순환출자로 인한 대주주 우호지분에 막혀 영향력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그룹 상장사 중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갖고 있는 87개사의 국민연금 평균 지분율은 7.98%인데 반해, 이들 기업의 대주주 및 특수 관계 우호지분은 37.01%로 국민연금이 의사를 관철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막혀 있다.
또 국민연금이 대주주 우호지분을 넘어서는 실질적 최대주주인 회사는 하나도 없었다.
12일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30대 그룹 183개 상장사의 국민연금 투자 현황을 조사한 결과, 지난달 말 기준 5% 이상 지분 보유 기업은 87개 회사로 ‘10%’룰이 해제되기 전인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해 평균 지분율은 7.45%에서 7.98%로 0.53%포인트 높아졌다. 투자 지분 가치는 48조6000억원에서 51조2400억원으로 2조6000억원(5.4%) 이상 증가했다.
10%룰 해제 이후 국민연금 투자 지분율이 10%를 초과한 기업도 17개에 달했다.
10%룰은 국민연금의 투자 지분율이 10%를 초과할 경우 단 1주를 매매하더라도 5일 내에 즉시 공시하도록 한 규정으로 국민연금 투자 족쇄로 작용해 왔으나 지난해 8월 전격 해제됐다.
국민연금 투자 지분율이 가장 높은 기업은 12.74%를 보유한 LG상사였으며 삼성물산(12.71%), CJ제일제당(12.69%), SKC(12.53%), 제일모직(11.63%), LS(11.39%), LG하우시스(11.34%), 롯데푸드(11.32%), LG이노텍(11.22%), 현대건설(11.17%) 등이 톱 10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의 대주주일가 및 우호지분은 37.01%로 국민연금 지분의 4.6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이 9.2%의 지분을 갖고 있는 롯데하이마트는 대주주일가 및 계열사 우호지분이 65.3%에 달해 7배나 많았고, 국민연금이 10.1%의 지분을 갖고 있는 신세계인터내셔널도 대주주 우호지분이 68.2%로 6.8배나 높았다.
국민연금 지분과 대주주 우호지분 격차가 가장 적은 곳은 제일모직으로 국민연금 11.6%, 대주주 12.2%로 격차가 0.6%포인트에 그쳤다. 삼성물산도 국민연금 12.7%, 대주주 13.8%로 격차가 1.1%포인트에 불과했다.
국민연금이 10%룰 해제 이후 반년 사이에 투자지분을 크게 늘리며 일부 투자기업에서는 총수에 버금가거나 뛰어넘는 지분을 확보했지만, 대주주 일가가 순환출자로 인한 계열사 지분과 특수관계인 등 보이지 않는 우호지분을 대거 확보하고 있어 표 대결로 갈 경우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87개사 중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인 회사는 8개, 2대 주주인 회사는 38개 등 총 46개로 절반이 넘지만 대주주일가 및 특수 관계인들의 우호지분을 넘어서는 경우는 단 한 곳도 없어 물리적인 의결권 행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횡령이나 배임 등 비리 경영진의 퇴진은 물론 대주주의 전횡조차 견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그나마 의결권 강화를 위해 사외이사 선임 시 이사회 참석률 기준을 현행 60%에서 75% 수준으로 높이고, 재직 연수 제한을 ‘당해회사 및 계열회사 포함 10년’으로 확대했지만 실제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이 주요 주주로 있는 30대 그룹 87개 상장사 사외이사 291명 중 10년 이상 재임자는 SK케미칼, 한진, 대한항공 등에 각 1명씩 총 3명(1%)에 불과하다.
특히 5년을 쉬었다 사외이사로 다시 선임될 경우 이를 허용하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어 사실상 계열사를 돌며 연임하는 기존의 행태를 원천 차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국민연금은 수십조원의 막대한 국민 자본을 투자해 재벌 대주주일가보다 더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한국의 독특한 순환출자 구조와 기업 우호지분에 밀려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하고 주주가치를 지킬만한 창과 방패가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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