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커머스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조짐이다. 그 진앙지는 '박리다매' 전략으로 무장한 제트닷컴과 '양보다 질'을 내세운 피나스트닷컴 두 곳이다. 세계 온라인 쇼핑몰 업체들은 정반대의 전략을 내세운 두 회사 등장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 이들이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게임체인저가 될지 관심이 높다.
◇제트닷컴…박리대매로 시장 주도한다
e-커머스 시장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을 강자가 등장했다. 온라인의 코스트코를 지향하는 '제트닷컴(Jet.com)'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인터넷 쇼핑몰을 두고 웬 호들갑이냐고 물을 수 있지만, 이건 좀 특이하다.
우선 다른 온라인 기반 쇼핑몰보다 엄청나게 싼 가격을 표방한다. 제트닷컴은 저렴하기로 소문난 아마존보다 5~6%, 일반 온라인 쇼핑몰 보다는 10~15% 정도 싸게 상품을 팔겠다고 공언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를 쓰면 깎아주고, 한 개 살 거 여러 개 사면 또 할인이 적용된다. 소비자가 구매한 물건을 반품하지 않겠다고 서명하면 3%를 더 깎아준다. 가령 150달러짜리 전자레인지를 사면서 반품 의사가 없다고 표시하면 4.5달러를 아낄 수 있다.
이렇게 팔고도 남는 게 있을까란 생각이 들지만, 제트닷컴도 영리를 추구하는 사기업인 만큼 나름의 수익구조를 만들어 놨다. 물건 판매 마진을 포기하는 대신 연간 회비로 이득을 거둔다는 전략이다. 회원들이 저렴한 물건을 대량으로 사들이면 '박리다매' 효과가 생겨 수익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구매자가 언제든지 받은 물건을 반품할 수 있도록 '365일 무료 반송' 정책도 준비됐다. 불만 어린 고객을 매일 상대하노라면 비용이 커지기 마련이라 실적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런 정책을 만들어 놓은 이유는 장기 충성고객층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업계 조사에 따르면 물건을 반송하는 과정에서 벌금을 냈거나 불쾌한 감정을 느꼈던 미국 소비자의 81%가 해당 온라인 쇼핑몰을 다시는 방문하지 않았다고 한다. 반대로 반송 서비스에 만족했던 소비자의 95%는 다시 그 사이트를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런 조사대로라면 당장은 무료 반송 정책으로 손해가 발생하겠지만, 서비스에 만족한 구매자가 늘면 장기적으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된다. 이로써 싸게 팔면서도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제트닷컴의 경영철학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영국 런던 소재 물류창고 (사진=로이터통신)
제트닷컴의 경영철학은 모두 마크 로어 창업주의 머리에서 나왔다. 마크 로어는 지난 2005년 전자상거래 사이트 ‘다이어퍼스닷컴(Diapers.com)’을 창업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이 사이트를 아마존에 5억5000달러에 매각하면서 성공한 창업주 대열에 합류했다. 마크 로어는 이 때의 성공을 기반으로 제트닷컴을 준비했다. 정식 서비스 런칭 전인데도 유명 벤처캐피탈인 베인캐피탈과 골드만삭스, 구글벤처스가 이 회사에 이미 1억400만달러의 자금을 투자했다. 덕분에 제트닷컴이 ‘제2의 아마존’이 될 것이란 기대감 마져 생겼다.
제트닷컴은 오는 2020년까지 총 거래량(Gross Merchandise Volume·GMV)이 매년 2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게 현실이 되면 미국 최대 할인매장인 월마트의 온라인 부분 실적과 사무용품 업체 스테이플스의 수익을 능가하는 실적을 기록하는 것이다. 제트닷컴은 또 일 년 동안 고객 수가 100만명에 이르고 5년 안에 그 수가 1500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게 아니다. 제트닷컴이 목표로 한 수익을 거두려면 박리다매 전략이 통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온라인상에서 물건을 대량으로 사들일지 미지수다. 소매 업체들은 제트닷컴의 성공으로 온라인 쇼핑몰의 판도가 뒤바뀔지 주시하고 있다.
◇피나스트닷컴, ‘양보단 질’로 승부
"이탈리아의 장인정신과 창의력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안드레아 비간 '피나스트닷컴(Finaest.com)' 공동 창업자가 한 말이다.
안드레아 비간은 싱가폴 온라인 패션몰 자로라와 라펠라, 돌체앤가바나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2013년 수공예 액세서리와 남녀 기성복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피나스트닷컴을 창업했다.
그는 소수의 구매자에게 최상급 상품을 선사하는 전략을 세우고 뛰어난 제작업체와 독점계약을 맺는 데 집중했다. 그 결국 피나스트닷컴은 이탈리아 본토에서 제작된 최상급의 상품만을 취급할 수 있게 되었고, 이 덕분에 전통을 중시하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최근 이탈리아 토종 이커머스 스타트업이 미국 패션계를 주도하고 있다는 소식을 기사화 하기도 했다.
미국 뿐 아니라 런던과 홍콩, 상파울로 등지에 사는 젊은이들도 이 회사의 주요 고객이다. 파나스트닷컴은 제대로 차려입기 위해 기꺼이 비싼 값을 지불하는 세련된 도시인들을 겨냥하면서도, 이탈리아 고유의 전통성을 놓치지 않았다. 상품 사진 하나에도 이탈리아 특유의 고급스러운 느낌을 담아내려고 애썼다. 회사는 조만간 '스토리텔링 (Storytelling)' 기법도 도입해 상품만 파는 게 아니라 거기에 담겨있는 의미도 묶어서 전달할 계획이다. 이탈리아의 장인정신을 존중하는 이들에게 솔깃할 만한 소식이다.
그러나 정작 이탈리아인들은 자신들이 만든 제품을 만져 보지도 않고 온라인에서 사고 파는 게 불만인 모양이다. 안드레아 비간 창업주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제품을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는 경우에 이탈리아인들의 불신이 크다”고 털어놨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피나스트닷컴은 고객들과 더 대화하고 상품의 질을 업그레이드 할 방침이다.
윤석진 기자 ddagu@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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