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장한나기자] 기획재정부가 내년초 사이버보안센터를 설립하기에 앞서 인터넷망과 업무망을 분리하는 망분리 작업을 완료했으나 이 과정에서 작업을 맡은 업체들이 지나치게 손해를 봤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1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재정부는 지난 3월말부터 인터넷을 통한 해킹을 막기 위해 기존 개인용컴퓨터(PC)를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는 업무용 PC로 전환하고 인터넷만 이용하는 PC를 직원들에게 약 1000대가량 지급했다.
재정부는 이번 작업을 통해 인터넷용 PC에서는 메신저, 개인간 파일공유(P2P) 프로그램 등은 사용할 수 없고, 기본적인 인터넷 검색만 가능하도록 했다. 또 매주 수요일마다 인터넷용 PC에 있는 내용은 자동 삭제되도록 했다.
직원들이 문서작성 등 행정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업무용 PC를 사용해야 하고, 인터넷용 PC로 다운로드 받은 자료를 사용하려면 2기가바이트(GB) 용량의 보안용 휴대용저장장치(USB)에 담아 업무용 PC에 옮겨 사용해야 한다.
보안용 USB는 각 개인별 암호와 사용자 아이디(ID)를 입력해야 쓸 수 있고 분실돼 타인이 사용하는 과정에서 오류암호를 연속 입력하면 내용물이 자동으로 파기된다.
직원들의 프린터 사용기록도 남도록 했다. 이에 따라 누가 어떤 자료를 프린트했는지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한 것이다. 이같은 보안시스템은 내년에 구축될 사이버보안센터에 대한 기본작업으로 지난 2월 재정부에서 해킹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서둘러 도입됐다.
◇ 정부 사업 맡은 업체 "제값 못받아 어렵다"
그러나 재정부가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각종 보안장치를 도입한 것은 좋았으나 이 때문에 사업을 맡은 업체들이 어려움을 호소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번 사업에 총 소요된 예산은 17억9000만원. 당초 예산안은 20억~21억원이다. 납품업체를 선정하는 공개경쟁입찰과정을 통해 3억원 가량을 줄였다.
국민 세금인 예산을 아낄 요량으로 IT업체가 손해를 감수하게끔 해 관련 IT업체에 제값을 다 치르지 않고 절반 이상 가격을 깎아낸 것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보안용USB의 경우 시중가 7만6000원에서 반값 정도인 4만원 안팎에 구입했다"고 밝혔다.
인터넷용 PC의 구입가격도 시중가 120만원에서 절반가량 할인된 50만~60만원 정도. 이 가격으로 보안용 USB와 컴퓨터는 각각 1000대 가량 조달됐다.
이 관계자는 "공공 조달물품이 시중가보다 저렴하게 책정될 뿐 아니라 공개경쟁입찰과정을 통해 추가로 30~40%가량 가격이 떨어지고 물품을 판매한 시기에 환율이 30% 가량 올라 조달업체의 부담이 컸다"고 털어놨다.
이번 사업은 L사가 총괄해(시스템통합(SI)방식) 보안용 USB는 B사, 인터넷용 PC는 S사 등이 협력(하청)업체 로 각각 참여했다.
◇ 외국업체는 제값 다 주고 국내업체만 깎는다?
IT업계 관계자들은 "정부 등 공공기관 사업에 IT업계가 손해를 보고있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정부가 국내 IT업체에게 가격을 깎는 것을 당연시 하면서도 외국업체에 대해서는 제값을 다주고 물품을 사주는 것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L사 관계자는 "손해를 보고 팔았다"고 털어놨고, B사 관계자도 "O사 같은 외국기업이 정부조달할 때는 제 값을 다 주면서 국내기업이 납품할 때는 (가격을) 깎으려고만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개경쟁 입찰방식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E사 관계자는 "공개경쟁입찰 방식이 필요 물품을 개별적으로 입찰시키는 것이 아니라 한 사업체(SI)가 총괄하게 되면서 가격을 쉽게 깎을 수 있게 된다"며 "여기에 사업체 대표 아래로 협력업체들이 묶여 있어 정부가 가격을 깎게 되면 밑의 업체들도 따라서 깎게 돼 상대적으로 영세한 협력업체들은 어려움이 많다"고 호소했다.
예를 들어 시장가격으로 1억2000만원짜리 물품이 공개경쟁입찰과 추가 할인 등을 거치면 3700만원까지 내려가게 되는데 이 경우에는 도저히 영업이익을 낼 수가 없기 때문에 손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업체들이 정부 조달을 계속하는 이유는 현재로서는 정부가 거의 유일한 공급망이기 때문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아무래도 정부 공급시장이 안정적이지 않겠냐"며 "하지만 이런 방식은 국내IT업체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문제점이 있음을 시인했다.
업계 관계자는 "요즘같은 불황에는 그나마 제품을 사주는 곳이 정부 뿐이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납품한다"며 "정부가 IT업계 살리기를 원한다면 경쟁입찰방식을 현실화시키고 국내 IT업체들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도 바뀔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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