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광표기자]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 기업 경영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오늘 할 일과 내일 할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궁리하고 있다."
95세(1922년생) 고령임에도 줄곧 이같은 경영의지를 드러냈던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하지만 화려한 퇴장은 아니다.
성년후견인 지정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 퇴진 배경으로 거론되고 있다. 장남 신동주와 차남 신동빈간의 경영 분쟁에서 장남 편에 섰던 패잔병의 씁쓸한 모양새다.
24일 재계 등에 따르면 '창업 1세대', '맨손 기업인'으로 불렸던 신 총괄회장의 퇴진은 25일 롯데그룹 뿌리인 롯데제과의 등기이사 임기만료로 시작된다. 같은날 호텔롯데에서도 등기이사직을 내려놓는다.
이후 11월 부산롯데호텔, 내년 롯데쇼핑과 롯데건설(3월), 롯데자이언츠(5월), 롯데알미늄(8월) 등 순차적으로 다른 계열사 등기이사직에서도 이름을 지운다.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대기업을 일구며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받던 신 총괄 회장의 퇴진에서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빈손으로 일본으로 넘어간 그의 삶은 순타하지 않았다. 1945년 일본인 지인의 도움으로 선반용 기름인 커팅오일을 만드는 공장을 차렸다가 연합국 폭격으로 잿더미가 됐다. 다시 일으키려 했지만 미군의 B-29 폭격으로 또 다시 공장이 전소됐다.
이듬해 5월 비누를 만드는 '히까리 특수화학연구소'를 차려 전후 특수를 누린 그는 신사업으로 '껌 제조'에 나섰고 대히트를 쳤다. 1948년 6월, 지금의 롯데를 세우게 된 발판이 됐다. 한국과 인연은 1966년 롯데알미늄을 설립하면서 맺었고,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한 뒤 계열사 수를 늘리며 재계 5위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롯데'라는 이름은 괴테가 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이름인 '샤롯데'에서 따왔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신 총괄회장의 바람이 담겨있었다. 훗날 그는 "롯데라는 상호와 상품명은 내 일생일대의 최대의 수확이자 걸작의 아이디어라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고집스러운 경영의지를 보인 게 분쟁의 사단을 만들었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 그는 경영신념 앞에선 자식에게도 매몰찼다. 2014년 12월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수억 엔의 손해를 회사에 끼쳤다는 이유로 그를 주요 임원직에서 모두 해임했다. 회삿돈으로 투자를 하면서 보고도 하지 않았고, 회사에 결국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난해 7월에는 반대로 동생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중국 사업 손실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둘째 아들에게도 해임카드를 내밀었다. 이는 자식과의 신의가 깨지기 시작한 발단이 됐고 분쟁의 단초가 됐다. 장남인 신동주는 석고대죄로 신 총괄회장의 마음을 다시 얻었으나, 차남 신동빈은 이제 아버지의 뜻과 상관없이 '원톱체제' 다지기에 열중이다. 이날 주총에서 의결되는 신 총괄회장의 등기이사 퇴진도 같은 맥락이다.
가장 늦게까지 현역으로 활동한 1세대 기업인으로 '롯데왕국'의 왕으로 군림해왔던 '신격호 시대'가 완전히 저물게 됐다. 한일 양국에서 거침없는 성공신화를 써왔던 그의 파란만장한 삶 끝자락은 결국 '쓸쓸한 퇴장'이 된 것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타의에 의해 결국 경영 일선에서 퇴장을 한다. 청춘을 바쳐 맨손으로 롯데를 일구던 22세의 신 총괄회장(사진 왼쪽·1944년))은 차남 신동빈 부회장에 의해 경영에서 물러나며 씁쓸한 말년을 맞이하고 말았다. (사진=롯데20년사·뉴스1)
이광표 기자 pyoyo8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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