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증권사 직원을 사칭해 결혼을 약속한 뒤 피해 여성으로부터 돈을 갈취한 20대 남성 A씨가 지난 10일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무직 상태였던 그는 돈이 필요해지자 자신을 대기업 계열 증권사에 다니는 직원으로 위장해 여자의 환심을 샀다. ‘내년에 결혼하겠다’는 사탕발림에 넘어간 여자는 4000만원이 넘는 돈을 대출까지 받아 빌려줬다.
올해 초 A씨보다 더 대담한 사기꾼도 덜미를 잡혔다. 역시 자신을 대기업 증권사 직원으로 사칭한 30대 남성 B씨는 세 명의 여성과 결혼을 약속했고, 투자금 명목으로 2억원이 넘는 돈을 뜯어냈다. 해당 증권사 사원증을 위조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수법이 동일한데도 이러한 ‘증권맨 행세’ 사기 행각에 돈을 빼앗기는 피해자들은 매년 발생한다. 지난해 5월에도 증권사 직원을 사칭해 초등학교 동창에게 1억원을 받아 챙긴 50대 남성이 구속됐다. 증권사 직원들끼리만 사고파는 채권이 있다, 돈을 맡기면 고수익을 보장해주겠다는 말로 사기를 친 것이다. 그러나 이 남성은 현업 직원이 아닌 증권사 소속 운전사였고, 차에 탄 임직원들로부터 들은 풍문을 이용해 동창을 현혹한 것으로 드러났다.
증권맨 사칭 사기에 피해자들이 매번 당하는 이유는 뭘까. 실제로 현직에서 일하고 있는 증권사 직원들은 ‘증권맨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근거 없는 환상’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 몇 년 사이 업황 침체와 구조조정을 거치며 위상이 내려가기는 했지만, 증권사에 다닌다고 하면 억대 연봉과 두둑한 인센티브를 받으며 여유롭게 생활한다는 선입견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다.
유명 아나운서나 여자 연예인이 증권맨, 펀드매니저와 초호화 결혼식을 올렸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노출되면 으레 잇따르는 부러움의 시선도 비합리적 환상을 키우는 데 일조하고 있다. 결국 우리가 만들어낸 불분명한 환상과 선입견이 증권맨 사칭 사기를 양산하는 토양이 된 셈이다.
증권맨을 사칭하는 사기꾼에게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일단 그들이 활용하는 수법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우선 돈 자랑을 실컷 한 뒤, 자신에게 돈을 맡기면 몇 배로 불려주겠다고 유혹하는 행태가 대다수라고 한다. 금융감독당국 관계자 조언에 따르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투자를 권유한 사람이 실제로 그 증권사에 재직하고 있는지를 해당 증권사를 방문해 확인하는 것이다. 권유자의 통장으로 직접 입금하는 일은 피하고 계좌 개설은 반드시 자신의 명의로 해야 한다. 어느 때건 '묻지 마' 투자는 금물이다.
이혜진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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