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인간 존엄성 상실의 시대
2016-07-26 12:00:00 2016-12-27 11:43:02
인간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 존재 가치와 인격을 존중받아야 한다. 출신과 인종은 물론 남녀노소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가지고 태어난 그 권리를 인간의 존엄성이라고 한다.
 
과거 전제군주제와 폭압적 종교권력 아래에서 인간으로서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긴 채 생명까지 위협받아야 했던 중세시대의 어두운 그늘을 벗어난 근대사회가 무엇보다 중시했던 근본이념은 바로 인간의 가치였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패전에 대한 상실감과 국가적 혼란을 틈타 일어난 독일의 나치즘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이 자행한 대량학살과 인간성 파괴를 경험한 나라들이 과거로의 회귀를 차단하기 위한 방법으로 가장 역점을 둔 정책도 인간의 존엄성 회복이었다. 
 
우리나라 헌법 역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고 규정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될 수 없는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어느 권력자나 국가 공권력에 의해서도 그 권리는 제한받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국내외 뉴스를 장식하는 민간인 대상 테러와 비인간적인 사건사고는 인간의 존엄성이 도대체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 것인지 망연자실하게 만든다. 
 
세계 도처에서 무참하게 희생되는 민간인 테러 희생자 숫자는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전방과 후방의 구분 없이 벌어지는 테러리스트의 학살이 평화로웠던 도심 거리를 피로 물들이고 있다. 갈수록 악랄한 수법을 동원하는 소프트 타깃 테러는 그만큼 더 많은 희생자를 낳는다. 테러리스트에게 있어 희생자들은 개개인이 고유한 가치를 지닌 인간이 아니라 단지 죽여야 할 살육 대상일 뿐이다. 신을 앞세우지만 인간성을 상실한 그들에게 종교적 자비는 찾아볼 수 없다.
 
흑인 대통령시대에 미국에서 벌어지는 흑백갈등은 노예제도를 둘러싸고 남북전쟁을 벌인 150년 전 벌어진 사건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보여준다. 자본주의와 민주화라는 허울 속에 잠재된 인종 갈등이 쉽게 치료될 수 없는 깊은 상처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존엄성을 훼손당한 인간은 치욕의 역사를 영원히 씻어내지 못하는 법이다. 용서는 할지라도 잊지는 못하는 그 상처는 언제까지나 갈등의 불씨로 되살아난다.
 
인간성과 생명의 가치 상실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현실이다. 국가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차디찬 물속으로 사라졌던 세월호 참사 희생자 304명의 원혼은 사건발생 2년이 넘도록 구천을 떠돌고 있다. 한 나라의 국민이자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한 희생자 가족들의 애끊는 호소는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릴 뿐이다. 
 
정의롭지 못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갈수록 인간성과 생명의 가치에 대해 무감각해진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서로 모르는 사람에게 화풀이하듯 자행하는 분노범죄가 급증하고 폭력에 노출된 채 성장하는 아이들은 폭력에 무감각한 어른이 된다. 많은 이들이 타인에게 자행되는 폭력을 애써 모른 체하면서 살아가지만 어느 순간 그 자신도 폭력의 희생자가 되고 만다.  
 
결국 우리에게 진짜로 필요한 것은 인간성 회복이다. 모든 인간은 존엄한 존재이며 생명의 가치는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다시 가르치고 배우고 각자 삶을 통해 실천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지 않고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근본부터 파괴되고 무너지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정경진 콘텐츠전략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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