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인표기자]
하나금융지주(086790)는 금융계에서 보아뱀으로 통한다.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보아뱀은 자기보다 몸집이 몇배나 큰 코끼리를 삼킨 뱀이다. 작은 자산의 회사가 훨씬 큰 규모의 회사를 인수할때 '보아뱀 인수합병(M&A)'이란 말을 쓰기도 한다.
시중 4개 은행 중 하나금융은 자산규모가 제일 작다. 그럼에도 큰 먹이감을 찾고 있다. 큰 은행을 인수합병하지 못하면 도리어 하나금융이 매물로 나올 수도 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선 '먹거나 먹히거나' 둘 중의 선택만 남을 뿐이다.
◇ "우리금융에 집중"
지난 10월 5일, 하나금융지주가 유상증자를 추진 중이라고 발표하면서 금융당국은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사전에 통지된 바도 없었고 금융당국은 "지주사의 건전성에 해가된다"며 오히려 작년 말 하나금융의 증자에 제동을 건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의 주가는 하한선인 15%까지 내려가며 요동을 쳤다. 유상증자라는 수단을 통해 총탄을 확보, 인수합병 전쟁에 나선다면 "시장은 네 편이 아니다"라는 경고를 보낸 셈이다.
결국 10월 23일 3분기 실적 발표 자리에서 김종렬 하나금융지주 사장은 “1조~2조원대 유상증자설은 해프닝"이었다며 한 발 물러섰다. 통상적 수준에서 최대 2조원 유상증자를 검토했는데,
우리금융(053000) 소수지분 매각 시기와 맞물려 오해를 샀다는 것이다. 주가희석에 따른 주주피해가 우려된다는 점도 배경으로 들었다.
그런 하나은행이 다시 인수합병전에 불을 질렀다.
지난달 20일 경기도 양평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은 "M&A에 대한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으며 기회가 된다면 우리금융에 집중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또 "신문에 올해 순익이 1500억원으로 나왔는데 그 곱절인 3000억원 이상 될 것"이라며 "내년에도 적극적으로 영업에 임하겠다"고 자신감있게 말했다.
◇ "8조만 있으면 절대 1위"
하나금융의 입장으로서는 인수합병을 통해 덩치를 최대한 키우는 게 제일 목표다. 그래서 '우리'가 더 땡긴다. 하나은행의 현재 자산규모는 160조원인데 112조원대
외환은행(004940)을 인수하더라도 272조원으로 만년 4위 은행에 머물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할 경우
순위 |
은행 |
자산 |
1위 |
KB |
331조 |
2위 |
우리 |
328조 |
3위 |
신한 |
311조 |
4위 |
하나+외환 |
272조 |
우리금융을 인수하면 상황이 완전 변한다. 328조원대 우리금융을 인수하면 488조원의 1위 은행이 된다.
KB금융(105560)이 외환을 성공적으로 인수하더라도 443조원에 불과해 40조원이나 앞서나갈 수 있다. 하나은행으로서는 보아뱀이 되어 자기보다 두 배 이상 큰 먹이를 먹고픈 욕심이 앞설 수 밖에 없다.
◇ 하나금융이 우리금융을 인수할 경우
순위 |
은행 |
자산 |
1위 |
하나+우리 |
488조 |
2위 |
KB+외환 |
443조 |
3위 |
신한 |
311조 |
김 회장이 대놓고 외환은행을 인수하기도 쉽지 않다. 국내 1위 KB금융, 산은지주, 최근엔 농협까지 외환은행을 바라보고 있다. 덤벼드는 사냥꾼이 많은 싸움보단 눈 밖에 난 '더 큰 먹이감'을 노리는 게 '하나'입장에선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른 법. 문제는 역시 '돈'이다. 외환은행 인수자금으로만 당장 5조~6조원이 드는데 그보다 거의 세 배나 큰 우리금융을 하나금융이 쉽게 인수할 방법은 당장 없어 보인다.
유력한 시나리오 중 하나는 대등합병.
양 은행이 서로 자사주를 교환함으로써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도 쉽지 않다. 우리금융은 지분의 66%를 예금보험공사가 갖고 있는, 사실상 국책은행이다.
정부와 예보 입장에서는 우리금융의 인수합병 여부 보다 우리금융에 투입된 공적자금의 회수가 더 중요한 문제다. 국민 세금으로 살린 은행인데 공적자금 회수가 지지부진하면 여론의 눈총을 받아야 한다.
다른 시나리오는 컨소시엄이다. 우리금융을 하나금융이 인수할 경우 시가평가액 13조원 중 절반인 7조원 정도에 경영권 프리미엄 1조원을 더 하면 8조원이 필요하다.
자기자본으로는 어려운 게임에서 하나금융은 국민연금 등과 같은 외부 파트너의 지원이 절실하다. 5조원을 끌어와도 만년 4위, 7조원을 끌어오면 절대 1위.
하나금융의 선택이 어느 쪽에 가까울지 판단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결국 인수에 필요한 자금, 즉 돈이 문제 아니겠는가"라며 "그만한 자금 여력이 되는지 먼저 확인해 본 후 인수합병 얘기가 나오는 게 순서"라고 말했다.
◇ 정치적 부담도 극복 과제
2008년 노벨상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은 '불황의 경제학'이란 책에서 "경제는 정치적 배경을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하나금융을 두고 정치적 배경을 얘기하는 건 김 회장과 이명박 대통령의 각별한 사이 때문. 둘은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으로 동기다.
김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에서 "재산을 공익사업에 쓰겠다"며 약속해 설립된 청계재단 이사진 중 한 명이다. 지난 10월 이 대통령의 동남아 3개국 순방에 시중은행권 중 유일하게 김 회장이 동행했고 저신용자·저소득층 대상 무담보 소액대출 재단인 미소금융재단 이사장도 김 회장이다.
특히 하나금융이 은평뉴타운에 세우는 자립형 사립고 '하나고등학교'는 지난 2003년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우수학교 설립을 위해 추진해 오던 것으로 작년 4월 우선협상대상자 공모를 통해 하나금융이 설립대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이런 배경이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인수매물로 얘기되는 우리금융의 이팔성 회장 역시 대표적인 MB맨이다.
고대 법대 출신으로 이 대통령 후배이고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 당시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이사를 거쳐 지난 대선에서는 이 후보 상근 특보를 지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금융을 우리금융을 시장 논리에 반하는 방법으로 인수하게 된다면 정치적 특혜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커진다. 물론 시장 원칙에 따라 세련된 방식으로 인수하면 정치적 역풍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나금융이 금융권 M&A의 또 다른 핵이 될지, 외환은행은 물론 우리금융 인수까지 실패하면서 '찻잔속의 태풍'이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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