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일본이 뛰어가기 시작했다. 친구가 운영하는 사학재단에 특혜를 준 것으로 알려져 정치적 생명이 오락가락했던 일본의 아베 총리가 부활했다. 정치적 승부수로 중의원을 해산하고 선거전에 뛰어들었던 연립여당이 전체 의석수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었다. 아베 총리가 총재로 있는 자민당은 전체 465석 중 284석을 차지해 단독 과반을 만들었다. 자민당과 손잡은 연립 여당인 공명당의 의석수 29석까지 합하면 313석으로 개헌안 발의까지도 가능하다. 이번 총선의 압승으로 ‘선거의 왕자’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 아베 총리의 승리 배경은 무엇보다 일본 국민들의 불안감 때문이었다. 북한 미사일이 일본의 영공을 넘나드는 위기 국면에서 아베 총리는 강경한 북핵 대응으로 인상적인 이미지를 유권자들에게 심어주었다. 2021년 9월까지 재임이 가능해진 아베 총리의 선거 압승은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만 거둔 수확은 아니다. 2012년 연말, 총리 자리에 오른 이후 아베 총리는 초저금리 정책으로 시중에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시키는데 집중해왔다. 이른바 ‘아베노믹스’는 양적 완화, 재정 지출, 민간 투자라는 ‘3개의 화살’로 일본 경제 회복을 이끌어왔다. 집권 연립 여당의 선거 승리가 확정된 지난 23일 닛케이 지수는 57년만에 사상 최장인 15거래일 연속 오름세를 기록했다. 대졸 예정자들의 취업 내정률은 90%를 넘고 있다. 일하고 싶은데 일자리가 없는 사태는 일본에서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일본의 엔화가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이는 엔저 현상이 지속될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일본 제조업의 대외 경쟁력은 더욱 강해진다. 아베 총리의 선거 승리로 정처 없이 무기력하게 걷고 있었던 일본 경제는 다시 뛰고 있다.
일본이 뛰어가고 있다면 중국은 날아가고 있다.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마무리하며 시진핑 주석 체제는 더욱 공고해졌다. 당 대회의 색깔은 분명했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즉 ‘중국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의 천명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 민주주의 체제보다 중국의 중앙 집권형 정치 체제가 더 우월하다는 자신감의 발로다. 이런 자신감에는 경제적 성공이 뒷받침되고 있다. 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스타트업 기업을 ‘유니콘’이라고 하는데 2016년 기준(맥킨지)으로 세계 ‘유니콘’의 3분의 1은 중국에 있다. 기업 숫자는 미국이 30여개 많지만 기업들의 가치를 모두 합한 총액은 미국과 거의 차이가 없다. 시진핑이 주석 자리에 오른 후 지난 5년간 중국 경제는 과거 어느때보다 더 역동적인 성장을 해오고 있다. 미국, 독일, 일본, 한국의 첨단 기술을 모방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알리바바, 텐센트 등 세계적인 IT기업을 육성해 오고 있다. 4차 산업 혁명의 핵심인 인공지능, 빅데이터, 전기자동차, 인공위성 및 천체관측 등 첨단 기술 분야에 있어서 경쟁국들보다 한발 앞서 가고 있다. 연초 스위스의 다보스 포럼에서 주인공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라 시진핑 주석이었다. 보호무역을 주장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항마로 우뚝 선 시 주석은 자유무역의 파수꾼 역할을 자임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마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서 한발 빼려는 미국을 뒤로 하고 중국과 협력을 더 강조하는 지경이다. 뛰어가고 있는 수준이 아닌 날아가고 있는 중국이다.
뛰어가고 있는 일본 그리고 날아가고 있는 중국을 바라보는 한국은 어떤 상황인가. 전대미문의 현직 대통령 탄핵을 경험한 우리 정치의 환골탈태는 나타나고 있는가. 국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과 기능인 국정감사가 진행 중에 있다. 세계가 보고 있는 우리 정치 수준의 잣대가 되는 현장이다. 국정감사를 평가하는 NGO 국감 모니터단이 평가한 성적표는 분노가 치미는 수준이다. 낙제인 F 학점은 면했지만 C마이너스를 받았다. 경제와 산업은 어떤가.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조선, 철강, 해운은 대규모의 구조조정이 단행되었고 주요 수출 대상국가의 보호무역 장벽으로 된서리를 맞고 있다.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코스피 지수에 취해 우리 경제와 산업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자격지심 수준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소비자 분석 전문기관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 7월 실시한 조사에서 ‘국가 경쟁력만 놓고보면 우리나라가 성공한 나라에 속한다’는 응답은 38.5%에 머물렀다. 상대적인 평가인 국가 경쟁력을 걱정하는 목소리다. 이웃국가인 일본과 중국은 뛰어가고 있고 날아가고 있다. 지나친 기우일까. 대한민국은 무슨 배짱인지 걸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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