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었다
2018-11-22 16:44:15 2018-11-22 16:44:15
아시아의 다보스포럼이라 불리는 '보아오포럼'의 해외 지역회의가 서울에서 처음 열렸다. 지난 19일부터 20일까지 이틀간 진행된 '보아오 아시아포럼 서울회의 2018'은 중국의 보아오포럼 사무국이 주최하고, 한국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이 주관했다. 주최측은 첫 번째 동북아 지역회의, 해외 회의 중 역대 최대 규모, 첫 번째 중국 국무위원 파견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되며 재계 맏형에서 왕따로 전락한 전경련이 치르는 대규모 행사라는 점에서도 주목도가 높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먹을 것 없는 싱거운 잔치였다. 
 
조짐은 행사 첫 날 반포 세빛섬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부터 포착됐다. 300여명의 VIP 참석자 중 눈에 띄는 인물은 반기문 보아오포럼 이사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정도였다. 정재계 인사들의 교류의 장이라는 보아오포럼의 취지가 무색하게 국내 4대그룹 중에서는 황득규 삼성전자 중국본사 사장만이 참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마저도 "간단히 식사를 하러 온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이튿날의 본회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개막식에 앞서 열린 오전 세션은 행사 열기를 달구기엔 역부족이었다. 오찬과 메인 이벤트인 개막식도 준비된 좌석의 상당수가 비어있었다. "막판 신청자가 몰려 조기에 마감했다"는 주최측 설명이 무색했다. 강연 내용도 부실했다. 대부분의 중국 측 연사들은 주제와 상관없이 정부의 정책 홍보에 급급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발표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취재 열기도 떨어졌다. 대다수 취재진의 관심은 포럼 내용보다는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 등 일부 참석자들에게 모아졌다. 중국에서도 20여개 언론사가 동행했지만 '정해진 내용만 보도한다'는 방침 때문인지 이들의 모습을 찾기도 어려웠다. 
 
결국 모든 화살은 전경련으로 돌아갔다. 현 정부의 전경련 패싱 현상이 보아오포럼 흥행 실패를 야기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주요 그룹들도 전경련 회원사에서 탈퇴한 상황에서 관계 개선의 시그널로 읽히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조심했다. 국내 후원 기업으로 이름 올린 삼성과 SK 역시 중국 보아오포럼과의 인연으로 협력했을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전경련의 속앓이도 심했다. 대외적으론 이번 회의를 주관한다고 알려졌지만 실제 결정 권한은 크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주요 참석자와 회의 세부 일정 등이 모두 행사 직전 통보됐고, 중국 측은 국내 취재진의 동선 제한도 요구했다고 한다. "직접 행사를 개최했으면 욕을 먹어도 억울하지는 않겠다"는 관계자들의 토로가 이어졌다. 
 
이 같은 불협화음은 '동상이몽'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대국으로서의 지위를 과시하고 싶은 중국, 민간 외교 역량을 인정받고 싶은 전경련, 유엔 사무총장 퇴임 후 성공적 대외 행보를 이어가고 싶은 반기문 이사장까지. 모두의 욕심을 충족시키기에 이틀은 짧았고, 승자는 "내가 너무 자주 나와 지겨울 것 같다"는 한 사람 뿐이었다. 
 
김진양 산업1부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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