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출산 전 태아도 상해보험 피보험자가 될 수 있고 태아를 피보험자로 해 체결된 상해보험계약 보험기간도 출생 전 개시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H해상화재보험이 임모씨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7일 밝혔다.
대법원은 "임씨와 H화재는 보험계약 체결 당시 보험대상자인 A양이 태아임을 잘 알고 있었고, 보험사고의 객체가 되는 A양이 태아 상태일 때 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체결일부터 보험료를 지급해 보험기간을 개시했다. 이처럼 보험계약을 체결하게 된 동기와 경위, 절차, 보험기간, 보험계약에 의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당사자 사이에 위 특별약관의 내용과 달리 출생 전 태아를 피보험자로 하기로 하는 개별 약정이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2012년 딸 A양 출생 이전 H화재와 태아를 피보험자로, 자신을 수익자로 하는 보험계약을 맺었던 임씨는 딸이 출산 과정에서 두개골 골절·저산소성 허혈성 뇌손상으로 양안의 시력을 완전히 상실하자 보험계약에 포함된 신생아질병입원일당 특별약관·질병통원실손의료비 특별약관 등에 의해 H화재로부터 1000여만원의 보험금을 지급받은 뒤 보통약관·상해후유장해(80%이상) 특별약관 등에 의해 1억2200만원 보험금을 청구했으나 H화재는 보험금 지급사유가 아니라며 거절했다.
H화재는 "사람은 출생시부터 권리·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고, 사람의 출생시기는 태아가 모체로부터 전부 노출된 때를 기준으로 삼아야 하므로, 분만 중의 태아의 경우에는 상해보험의 피보험자가 될 수 없고, 태아를 피보험자로 해 체결된 상해보험계약의 보험기간은 당연히 출생시부터 개시해야 한다"며 "A양이 분만 과정에서 입은 상해는 피보험자의 예견과 동의 아래 이뤄진 의료행위로 인한 것으로서 '우연한 사고'로 인한 상해가 아니므로 보험계약에서 보장하는 보험사고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 보험계약 약관에서 '피보험자의 출산'으로 인해 보험금 지급사유가 발생한 경우 H화재의 보험금 지급의무가 면책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이는 피보험자가 출산의 주체인 경우는 물론, 출산의 대상이 되는 경우까지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H화재는 계약 체결 당시 태아 상태임을 충분히 인식하면서 A양을 피보험자로 해 보험계약을 체결한 것이고, 보험계약 청약서의 피보험자란에도 '태아'라고 명확히 기재되어 있는 점, 태아는 모체로부터 전부 노출된 때 권리·의무의 주체가 되는 것이나, 상해보험의 피보험자는 보험의 대상이 되는 자에 불과할 뿐 권리나 의무의 주체가 되는 자라고 할 수 없으므로, 태아가 피보험자의 지위를 취득하는 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만 해석할 수는 없고, 계약자유의 원칙상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태아를 피보험자로 하는 보험계약을 체결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또 "피보험자인 A양 또는 그 보호자들이 A양 분만을 위한 의료적 처치에 동의했다고 해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흡입분만 과정에서 A양에게 두개골골절 및 저산소성 뇌손상 등의 치명적인 상해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영구적인 시각장애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결과에 대해서까지 동의했다거나 이를 예견했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분만 과정에서 발생한 상해는 보험계약에서 보장하는 '우연한 사고'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고 H화재에 보험금 지급의무가 있다는 취지로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항소심도 "임씨는 딸을 출생하기 약 5개월 전인 2011년 8월 보험계약을 체결하고 첫 보험료를 납부했고, H화재는 보험증권에 보험기간 개시일을 2011년 8월25일로 기재했다. 이는 A양의 출생 전 태아 상태에서 발생하는 사고까지도 대비하고자 한 것으로서 태아를 피보험자로 하는 것이 계약 당사자 의사에 부합해 보인다"며 "보험계약 출생 전 자녀가입 특별약관에 따르면 '태아는 출생 시에 피보험자가 된다'는 규정이 있어 태아는 보험계약의 피보험자 지위에 있지 않다고 볼 여지가 있다면서도 임씨와 H화재가 태아를 보험계약의 피보험자로 하기로 상호 의사합치가 이뤄졌다고 추단되므로 특별약관 규정이 존재한다는 사정만으로 태아를 피보험자로 삼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H화재 항소를 기각했다. 대법원도 항소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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