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할인분양 갈등…'중재'와 '합의'가 최선
부동산시장 침체로 미분양 아파트 증가…할인 분양 늘어
제값 주고 들어온 주민 vs 할인 분양 주민 간 갈등 격화
2024-07-08 14:14:42 2024-07-08 14:26:53
[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아파트 분양을 놓고 새로운 갈등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할인 분양 갈등입니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미분양 아파트가 늘어나고 있는데, 건설사 등이 악성 미분양을 해소하고자 할인 분양에 나서면서부터 갈등이 촉발됐습니다. 높은 분양금을 내고 들어온 기존 입주민들이 할인 분양 세대의 입주를 막는 등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겁니다.
 
대구 도심 아파트 모습(사진=뉴시스)
 
지난달 26일 전남 광양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도 할인 분양으로 인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기존 입주민들이 도로에 드러누워 이사 차량의 진입을 막으면서 경찰까지 출동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이 아파트는 지난해에도 할인 분양 세대 입주민에게 ‘주차 요금 50배, 엘리베이터 사용료 500만원’ 등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기존 입주민들은 건설사에 할인 분양가로 소급 계약을 요구하거나 할인액 상당의 손해배상 등을 주장하고 있는데요. 하자보수를 1년 넘게 지연하면서도 할인 분양에만 몰두하는 건설사를 탓하면서 할인 분양 세대의 입주를 방해하고 있는 겁니다.
 
아파트 건축과 분양은 사인 간에 이뤄지는 행위이므로 계약자유의 원칙이 적용됩니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원칙적으로 계약 내용대로의 효과가 발생하고, 계약 내용은 당사자가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겁니다. 따라서 할인 분양을 할 경우, 할인된 분양가로 다시 계약한다거나 기존 분양가와의 차액 상당을 돌려준다는 등의 특약이 존재하지 않으면 기존 입주민들이 소급 계약을 요구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법원도 여러 하급심 판결(울산지방법원 2015년 4월23일 선고 2014가합2606 판결, 서울동부지방법원 2014년 12월10일 선고 2014가합104566 판결 등)에서 △사적자치의 원칙상 아파트의 시행사가 분양가를 책정할 자유 및 경제 사정의 변화나 부동산 경기 변동 등에 따라 사업수익을 확보하고 손실 최소화를 위해 분양가를 변경할 자유가 있는 점 △아파트 분양 업무의 성격상 분양하는 동안 경제 사정의 변화가 생겨 미분양으로 인해 상당한 손해가 발생하게 되면 할인 분양을 해서라도 그 손해를 줄이려는 것이 경제 주체로서 불가피한 선택인 점 △아파트 시세는 분양 가격이 일응 기초가 되지만, 경기침체가 있고 미분양 세대가 많은 아파트는 할인 분양을 하지 않아도 시세가 하락하므로, 미분양 세대에 대한 할인 분양이 곧 해당 아파트에 관해 할인 금액 상당의 재산적 가치의 하락으로 이어진다거나 그러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단정할 수 없는 점 등의 이유로 기존 입주자들의 손해배상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분양 업무를 사적자치의 영역으로 보고 건설업체의 할인 분양 등 미분양 세대 처리 방법을 폭넓게 인정한 것입니다.
 
기존 입주민들이 할인 분양 세대의 입주를 막는 또 다른 이유는 건설사가 하자보수를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이는 분양가 책정과는 상관없이 하자의 보수를 청구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 등으로 다툴 사안입니다. 하자보수를 요구하면서 애꿎은 할인 분양 세대의 입주를 막는 행위는 지양해야 할 것입니다.
 
이사 차량의 진입을 몸으로써 막는 것은 민·형사상 책임을 지게 될 우려도 있습니다. 형사적으로는 업무방해죄에 해당할 여지가 있습니다. 민사적으로도 이사 방해는 불법행위에 해당할 여지가 있는데요. 불법행위로 인정된다면 그로 인해 할인 분양 세대나 건설사 등이 입은 손해를 배상하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부동산 시장에 침체기가 올 때마다 이런 갈등이 반복되고 있는데요. 정부의 적절한 역할이 필요합니다. 부동산 시장을 부양하려다 또다시 투기 광풍을 유도하지 말고 민간의 갈등을 중재할 수 있는 기구 등을 설치해 원만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갈등 해소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높은 분양가로 입주한 입장에서는 일방적인 할인 분양이 자신의 자산 가치를 낮추는 배신행위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의 침체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점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경기침체기에 장기 미분양 세대가 많은 아파트 단지의 시세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법원의 판단을 봐도 그렇습니다.
 
기존 입주민은 할인 분양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인정하고 건설사는 기존 입주민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계약한 분양가가 적절했는지 다시 살펴보면서 적극적으로 협의에 나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런 출발선에서 시작해 합리적인 수준의 타협안을 마련하고 원만한 합의를 이루는 것이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입니다.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다소 폭력적이고 과격한 행동을 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엉뚱한 대상에게 화풀이하는 것은 추가적인 갈등만 유발하게 됩니다. 할인 분양으로 인한 갈등이 전국적으로 끊이지 않는 만큼 정부의 중재 노력과 기존 입주민과 건설사의 적극적이고 원만한 합의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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