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장기화로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 모처럼 삼겹살 가게를 찾은 것은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초열흘 저녁쯤이다. 방역을 위해 완전 무장 상태로 지인 4명이 뭉쳤으나 가게 안은 사실상 거리두기가 필요 없을 정도로 한산했다. 코로나발 직격탄을 받고 있는 서비스업종의 통계 수치는 늘 접하고 있지만 정작 손님이 없는 가게 안은 새삼스레 현실을 실감했다. 숙연해진 감정도 잠시 소고기 값과 맞먹는 삼겹살 가격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삼겹살이 왜 이리 비싸냐’는 물음에 주인장은 “손님도 없고 장사도 안 되고 식자재값 폭등에 이래저래 한숨만 난다”는 푸념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래도 품질 좋은 생삼겹살을 자부한다는 말을 뒤로 허기진 속을 달랬다. 사실 고기보다는 파무침 맛집에 별 하나를 줄 수 있을 정도다.
새콤달콤 양념 맛을 더한 싱그러운 파 맛은 고기 한 점의 풍미를 더욱 배가 시킨다. 연신 주문한 파 무침 치고는 한줌도 안 되는 양은 못 내 아쉬웠다. 많이 달라는 주문에 돌아오는 주인장의 대꾸는 파 값이 금값이니 남기지 말라는 탄식이었다.
순간 야박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춘분이 가까워질 때쯤 주인장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난 주말 장바구니를 들고 마트를 찾은 손님들은 파 값을 보곤 연신 혀를 내둘렀다. 나조차도 대파 한 단 사기가 선 뜻 내키지 않았다. 살 여력은 되나 막상 소비하기에는 소비 심리가 얼어붙은 셈이다. 코로나 여파에 식자재 값까지 급등하면서 외식업 종사자들의 근심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8000원 하던 대파 한단 값은 6000원대로 한풀 꺾였다고 하나 여전히 비싸다. 농산물유통정보(KAMIS)를 보면 3월 초 대파 1㎏ 가격이 7365원이었다. 지난 19일 기준으로는 6497원이었다. 파만 비싼 게 아니다. 지난 10일 기준으로 감자 20kg 도매 시세는 전년보다 60% 가량 올랐다. 달걀 값도 매한가지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이 공개한 한국 근로자 평균 월급과 생활물가 비교 분석 보고서를 보면, ‘밥상물가’로 지목되는 신선식품지수가 2015년 이후 연평균 3.9% 상승폭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파 227.5%, 사과 55.2%, 달걀 41.7% 등 밥상물가의 상승폭에 부담을 키우고 있다.
식자재가 오르는 사이 지난 1년여 동안 서울시내 골목상권 1009곳 중 매출액 감소를 본 곳은 절반 이상에 달하고 있다. 장사가 어려운 식당가는 일손까지 줄었다. 문제는 코로나발 여파에 조류인플루엔자, 돼지열병 등 가축전염병과 기후변화까지 물가 상승 흐름은 쉽사리 꺾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서민 물가뿐만 아니다. 인플레이션 위협이 고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현재로서는 극진적인 물가급등의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위축 국면을 맞고 있다는 점에서는 부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한국전력이 2분기(4∼6월)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않고 유보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매번 ‘서민물가 안정’을 주창하는 정부의 입감이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있다. 파값 하나 못 잡는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잡겠다고 하니 이래저래 공분만 사고 있는 꼴이다.
이규하 경제부장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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