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송희 기자]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업종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가격 상승으로 실적 개선이 기대되는 업종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원가(재료·노무·경비)가 오르면서 기업 실적에 직격탄이 우려되는 곳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원자재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업종별·종목별로 차별화된 투자 전략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5일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업종별 전망을 종합하면 원자재 가격에 따른 대표 수혜 업종은 정유·석유화학·에너지 업체 등이 꼽힌다. 반면 원가 상승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업종으로는 저가 항공사(LCC), 자동차, 소비재 등이 제시된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꼽은 수혜 업종은 정유다. 유가가 오를수록 정유사들의 이익과 직결되는 정제마진이 개선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한상원 대신증권 기업리서치부 연구원은 “신흥국 코로나19 회복으로 인한 수요 개선, 중국 전력난 등으로 인해 원자재(유가) 가격 상승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정유 업종은 이러한 유가 상승을 호재로 인식하고 있으며, 국제 유가와 정제 마진이 함께 올라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월 기준 정제마진은 4달러 수준에 불과했지만 가격이 오르면서 지난달 7달러를 상회하기 시작했다. 정유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정제마진의 손익분기점을 4~5달러로 보고 있다. 이를 밑돌면 이익보다는 손실을 보게 되는 구조다. 한 연구원은 “정제마진 상승 중심의 실적 견인을 기대한다”면서 “향후 항공유 수요 회복까지 이뤄질 경우 더욱 탄력적인 정제 마진 상승을 예상한다”고 강조했다.
관련 업체들의 수혜 기대감이 오른다.
S-Oil(010950)과
SK이노베이션(096770) 등 정유 업체들은 유가 상승이 재고 관련 이익 증가로 이어지는 대표 기업이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정유업체 S-Oil과 SK이노베이션 등은 올해 하반기 수요 복원과 함께 정제 마진 상승세까지 기대된다"며 "투자 비중 확대가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주가도 상승세다. S-Oil은 8월서부터 주가가 상승하기 시작하면서 이날 기준 52주 신고가(11만7500원)를 새로 썼다.
5일 서울시내의 한 주유소 모습. 사진/뉴시스
천연가스 가격 급등에도 주목해야 한다. 최근 중국은 정부가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강조하며 주전력원인 석탄의 생산을 제한하자 수급이 깨지면서 전국적인 전력난이 발생했고, 이에 따라 급히 대체 원료인 천연가스 수입에 나선 상황이다. 미국은 천연가스 재고 비축을 가속화하고 있어 천연가스 가격 급등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천연가스는 화석연료 중 탄소배출량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석탄에서 천연가스로의 에너지 전환을 선택지로 넣고 있다.
김소현 대신증권 FICC 리서치 연구원은 “유럽 내 천연가스 재고율은 72%로 직전 5개년 동기 평균 재고율인 88%를 하회하고 있고, 미국의 경우에도 천연가스 재고량이 직전 5개년 평균치보다 8% 정도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면서 “겨울철 난방시즌 돌입으로 수요가 증가한다면, 수급이 더 타이트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천연가스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수혜 업종으로 종합상사와 에너지 기업이 주목받을 전망이다. 신승진 삼성증권 수석 연구위원은 “미얀마 가스전을 보유해 천연가스 상승 수혜를 기대할 수 있는
포스코인터내셔널(047050)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석탄 가격 상승으로는
LX인터내셔널(001120)을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달리 원자재 가격으로 불안에 떨고 있는 업종도 다수다. 기업의 순이익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원가가 급등할 우려가 높아져서다. 주요 업종으로는 항공과 해운, 소비재 등으로 높아진 원자재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기업에 집중돼 있다. 신승진 삼성증권 수석 연구위원은 “화물 운임 강세를 보이는 대한항공은 유가 상승을 상쇄할 가능성이 있지만, 여객 중심의 LCC 업종은 비용 압박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객 중심의 LCC 업체로는 제주항공, 진에어, 티웨이항공, 에어부산 등이 꼽힌다.
또한, 자동차 업종도 불안 업종으로 제시된다. 이현수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하반기 원재료비 상승은 완성차 생산 원가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라며 “원재료비 상승분에 대한 판가 전이 여부와 규모, 자동차 판매 대수 등을 종합적으로 체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희원 신한금융투자 투자전략부 연구원은 “유가 상승으로 마진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는 자동차 등 유틸리티 업종은 정부의 가격 정책에 따라 수혜 또는 피해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증시 전문가들은 원자재를 활용한 투자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선 가격의 상승여력과 변동성, 통화정책 등 주요 경기 지표 등에도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매크로 팀장은 “원자재 가격 상승 여력이 크지 않을 수 있어 가격 상승에 베팅하는 종목 선택 전략은 추천하지 않는다”면서 “다른 추세적 변화가 있더라도 시클리컬(경기민감주) 팩터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창영 유안타증권 기업분석팀장은 “원자재가격 상승에 따른 수혜주를 특정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원자재 ETF(상장지수펀드)나 특정 원자재 선물 투자가 유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재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단기적으로는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공급난이 매출에 미칠 가능성이 높은 경기민감업종보다는 원가 부담이 낮고 상관관계가 낮은 콘텐츠나 플랫폼 관련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편안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면서 “고배당 기업들이 포함돼 있는 은행이나 증권 업종으로 인플레이션을 헷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송희 기자 shw10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