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직장 내 성범죄로 근로자가 사망한 경우, 피해자 유족들에게 산재보험금을 지급한 근로복지공단은 가해자를 상대로 보험금을 청구할 있을까. 하급심은 긍정했지만 대법원은 불가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근로복지공단이 동료 직원을 상대로 상습적 성범죄를 저질러 사망에 이르게 한 직장상사 A씨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A씨의 상고를 받아들여 사실상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14일 밝혔다.
대법원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산재보험법 87조 1항 본문은 '공단은 제3자의 행위에 따른 재해로 보험급여를 지급한 경우에는 그 급여액의 한도 안에서 급여를 받은 사람의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한다'고 정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구상권 행사의 상대방인 '제3자'란 재해 근로자와 산재보험법관계가 없는 사람으로서 재해 근로자에 대해 불법행위 등으로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사람을 말한다"고 밝혔다.
또 "동료 근로자에 의한 가해행위로 다른 근로자가 재해를 입어 그 재해가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는 경우 가해행위는 사업장이 갖는 하나의 위험에 해당한다"면서 "그 위험이 현실화 해 발생한 업무상 재해에 대해서는 근로복지공단이 궁극적인 보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 산재보험법의 사회보험적 또는 책임보험적 성격에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근로자가 동일한 사업주에 의해 고용된 동료 근로자의 행위로 업무상의 재해를 입은 경우, 그 동료 근로자는 보험가입자인 사업주와 함께 직·간접적으로 재해 근로자와 산재보험법관계를 가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산재보험법 87조 1항에서 정한 '제3자'에서 제외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결국, 피고는 보험가입자인 사업주와 함께 직·간접적으로 재해 근로자인 피해 근로자와 산재보험 관계를 가지는 사람에 해당돼 산재보험법 87조 1항에서 정한 '제3자'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행사 할 수 없다"고 봤다.
이어 "그렇다면 동료 근로자의 가해행위가 사회적 비난가능성이 매우 큰 경우에는 동료 근로자가 궁극적인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사회정의에 부합한다는 이유 등을 들어 피고가 산재보험법 제87조 제1항에서 정한 ’제3자‘에 포함된다고 판단한 원심은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같이 일하던 B씨를 2년 넘게 지속적으로 성추행·성희롱 해 결국 B씨가 2017년 9월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했다. B씨 유족은 B씨가 업무상 사망으로 숨졌다며 유족보상금을 청구했고, 이에 공단이 총 1억5800여만원을 산재보험금으로 지급했다. 이후 공단은 B씨를 대위해 불법행위 책임자인 A씨를 상대로 구상금을 청구했다.
1심은 "피고는 원고에게 1억4700여만원을 지급하라"면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B씨의 극단적 선택과 피고의 불법행위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점, 동료 근로자의 가해행위가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는 경우 일률적으로 그 동료 근로자가 산재보험법상 제3자가 아니라고 볼 논리적 필연성이나 현실적 필요성은 없는 점, 공단의 구상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업무와는 무관하게 고의로 범죄를 저지른 자는 아무런 경제적 책임을 부담하지 않게 되는 점 등을 판결 이유로 들었다.
A씨가 항소했으나 2심 역시 같은 판단을 내리자 A씨가 상고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