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월째 무역적자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수출은 9.9% 감소했다. 지역별로는 중국 감소폭이 17.8%로 가장 컸다. 품목은 반도체로 44.5%가 줄었다. 반도체는 총수출 감소액의 52.4%를 차지한다. 한국의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 비중은 약 20%다. 한국 반도체 전체 수출에서 중국 비중은 약 40%다. 결국, 한국의 수출 감소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중국 + 반도체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이 줄거나, 반도체 수출이 급감하면 한국 불평등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중국 수출, 반도체 수출과 불평등을 연결하는 것 자체가 ‘매우 낯선 질문법’이다. 무협지 표현을 빌리면, ‘못 보던 초식(招式)’이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이 줄고, 반도체 수출이 급락하면 한국 불평등은 줄어들 확률이 매우 높다. 불평등에 미치는 변수가 다양하기 때문에 ‘반드시 그렇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불평등이 줄어들 확률이 높다’라고는 표현할 수 있다. 왜 그러한가?
대중의 눈높이에서 경제적 불평등을 직관적으로 재정의하면, ‘하층소득 대비 상층소득의 격차’다. 임금불평등의 경우, 불평등 증가는 3종류다. ①상층소득이 오르거나 ②하층 소득이 꼬꾸라지거나 ③중간층이 얇아지는 경우다. 불평등 하락도 3종류다. ①상층소득이 작살나거나 ②하층소득이 오르거나 ③중간층이 두터워지는 경우다.
대중국 수출과 반도체 수출이 작살나면 한국의 경제 불평등은 줄어든다.
대중국 수출액과 임금 지니계수 상관관계 (상관계수: 0.832). 제공=최병천 소장
한국의 임금 지니계수 - 1997년 전후, 2001년 중국 WTO 가입 전후. 제공=최병천 소장
한국의 상위 10%에서 가장 큰 비중은 수출+제조업+대기업 노동자다. 한국경제사에서 수출이 작살나서 임금 불평등이 줄었던 대표적인 경우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이후다. 이명박 정부는 보수쪽 사람들도 인정할 정도로 대기업친화적이고, 시장친화적인 정부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명박 정부 기간 내내 한국의 임금 불평등은 소폭 하락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글로벌 교역량’이 반토막났기 때문이다. 이 기간 한국경제 불평등은 축소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 글로벌 교역량 축소 → 한국의 수출 축소 → 한국 상층의 소득 증가폭 감소 → 한국의 임금불평등 축소 메커니즘이 작동됐다.
이명박 정부는 ‘수출이 작살나서’ 불평등이 축소된 경우다. 노무현 정부는 정반대였다. ‘수출 대박’으로 불평등이 증가한 경우다. 이명박 정부 시절은 ‘나쁜 평등’이고, 노무현 정부 시절은 ‘좋은 불평등’이었다.
중국은 2001년 12월 11일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까지 중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약 12%였다. 중국의 연평균 수출증가율은 약 25%였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기간에 한국의 ‘대중국 수출증가율’은 무려 30%였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대박은 ‘임금 불평등 증가’로 연결됐다. 상층 소득이 올랐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기간은 WTO 가입 이후 중국의 급성장기와 겹친다. 노무현 대통령은 불평등 축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었다. 그런데, 본인의 재임기간 중 불평등이 증가했다.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 진보적 노동단체들, 진보적 시민들, 진보정당은 노무현 대통령을 공격했다. 한미FTA같은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에 한국의 불평등이 증가했다고 공격했다. 그러나, 틀린 분석에 기반한 틀린 비판이었다.
대중국 수출과 반도체 수출이 줄어들면 한국 불평등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한국경제의 실제 현실은 1차 방정식이 아니다. 경제학자들과 정책 관계자들은 수출, 불평등, 경제성장, 산업구조 고도화, 경쟁력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최병천 <좋은 불평등> 저자·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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