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카셀 주립대학교 측이 기습 철거를 단행하자, 총학생회와 시민단체, 한인단체가 소녀상이 철거된 자리 피켓 설치를 통해 원상회복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코리안협의회 페이스북)
[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윤석열정부가 ‘독일 카셀 주립대학교 소녀상 철거문제’를 사실상 방관하고 있습니다. 한일 정상회담에 ‘악재’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 이 문제가 부각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입니다.
지난 9일(현지시각) 독일 카셀 주립대학교에서 평화의 소녀상이 기습 철거됐습니다. 이 대학에 설치된 소녀상은 카셀대 총학생회가 주도해 지난 2022년 7월8일 독일 최로로 대학 캠퍼스에 세워졌습니다.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사례를 보고 여성의 성폭력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학생회 의결로 세워진 겁니다. 독일 베를린 코리아협의회는 현지 시민단체의 권한을 위임받아 총학생회와 소녀상 영구임대 계약을 체결, 전시 여성 성폭력 문제에 대한 경각심의 뜻을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이 소녀상이 대학 측으로부터 기습 철거를 당한 겁니다.
카셀대 총학생회와 코리아협의회 등은 기습 철거의 배후에 일본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소녀상을 설치했던 카셀대 총학생회는 지난 13일 공식 인스타그램 입장문을 통해 “총학생회는 대학이 (일본)우익 보수정부의 정치적 압력에 굴복한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대학 총장단이 일본 극우단체의 악성 편지와 이메일에 시달렸고, 심지어 프랑크푸르트 주재 일본 총영사가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로 계속 방문해, 결국 철거를 결정하게 됐다는 설명입니다.
독일 여성단체, 카셀대 총학생회, 한인단체 대표자들이 평화의 소녀상 설치를 기념하는 모습. (사진=코리안협의회 페이스북)
일본은 총영사까지 나선 데 비해, 한국 외교부는 잠잠합니다. 외교부 관계자는 <뉴스토마토>가 ‘일본 총영사, 극우 단체들이 소녀상 철거를 지속 압박한 데 대한 외교부의 대응’에 대해 묻자 “소녀상 설치는 기본적으로 민간단체에 의해 설립되고 있다”고 짧게 답했습니다.
이는 소녀상 철거 문제가 한일 정상회담에 악재로 부상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결과입니다.
외교부가 소녀상 철거 문제를 방치할 경우 독일 내 다른 소녀상 철거로 이어질 우려도 있습니다. 현재 베를린 미테구에도 2020년에 소녀상이 세워졌지만 일본 정부의 항의로 2주 만에 철거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미테구청이 지난해 설치 허가를 1년 더 연장, 일단 시간을 벌게 됐습니다.
코리안협의회는 입장문에서 “소녀상이 제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현지 독일 여성-인권단체의 저항과 한국정부의 보이지 않는 외교적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윤석열정부가 한일 간 민감한 역사문제에 관해 일방적으로 백기를 든 상황이어서 앞날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고 했습니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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