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주혜린 기자] '응급실 뺑뺑이' 사고의 반복으로 당정이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보다 근본적이고 강도 높은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특히 어디까지 응급이고 어디까지 경증인지 치료를 해야 하는데 ‘현실을 무시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4일 <뉴스토마토>가 전문가를 대상으로 '응급실 뺑뺑이' 사고에 대한 대책을 긴급 진단한 결과, 병상과 의료진이 부족한 상황에서 센터 수를 늘리거나 환자 구분 체계를 바꾸는 정부의 대책이 얼마만큼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입니다.
“인프라 붕괴…근본적 대책은 의사 정원 확대"
‘응급실 뺑뺑이’ 사망 사례와 관련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응급의료 체계 붕괴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는 시각을 내놓고 있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은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권역 응급의료센터 등 인프라 구축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운영되는 응급실도 의료진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설만 늘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의료인력 확보부터 시급하게 추진해야 한다”며 “소방청, 보건복지부 등 응급의료체계 관계부처가 함께 응급의료체계 전반을 검토하고, 어느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는지 파악해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응급실 뺑뺑이’ 현상이 최근 5년간 전국에서 4만건 가까이 벌어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사진은 긴장감 흐르는 응급실 모습. (사진=뉴시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관계자는 “응급실 뺑뺑이의 원인은 의뢰한 병원의 배후 진료 능력 부족 때문”이라며 “환자를 치료할 만큼의 의료자원이 없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환자가 더 많은 치료의 기회를 얻기 위해선 상급종합병원 과밀화 해결과 경증 환자 119 이송과 응급실 이용 자제, 취약지 응급의료 인프라 확충, 비정상적인 응급실 이용 행태 개선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형민 한림대 성심병원 응급의료학과 교수(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어디까지가 응급이고 어디까지가 경증인지는 치료를 해봐야 하는 것"이라며 "경증이라고 해서 (응급실에서) 내보냈다가 환자가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라고 꼬집었습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대책으로 의사 정원 확대를 통한 응급인력 확충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의료진이 없으면 병원 확충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조언입니다.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021년 기준 2.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3.7명)보다 훨씬 떨어지는 상황입니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우리나라 응급의학과 전문의 수는 외국의 3분의 1 수준”이라며 “의과대학 정원을 늘리고 응급의학과 정원을 3배 가까이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교수는 "응급실 의료진을 늘리기 위해 이들을 위한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며 "비응급환자에게 먼저 의사와 병실을 내주고 남는 자원으로 응급환자를 보겠다는 고질병을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응급실 뺑뺑이 5년간 3만7200건…10명 중 3명은 ‘전문의 부재’
‘응급실 뺑뺑이’ 사태는 최근 5년간 전국에서 4만건 가까이 벌어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구급대가 도착한 병원에서 환자를 받지 않아 다른 병원으로 환자를 재이송한 사례 10건 중 3건의 원인은 병원에 전문의가 없어서였습니다.
‘응급실 뺑뺑이’ 현상이 최근 5년간 전국에서 4만건 가까이 벌어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사진은 긴장감 흐르는 응급실 모습. (사진=뉴시스)
최혜영 의원이 소방청에서 확보한 자료를 보면 지난 5년간(2018~2022년) 구급차가 처음 도착한 병원에서 환자를 받지 못해 재이송한 건수는 3만7218건으로 집계됐습니다.
1차 재이송(한 차례 거부) 건수는 3만1673건, 2차(두 차례 거부) 재이송은 5545건이었습니다. 연도별로 보면 2018년 5086건, 2019년 1만253건, 2020년 7542건, 2021년 7634건, 2022년 6703건 환자가 재이송됐습니다.
재이송 사유는 전문의 부재가 1만1684건(31.4%)으로 가장 많았고, 병상 부족(5730건·15.4%)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병상 부족 가운데서는 응급실 부족이 3698건으로 가장 큰 이유였고, 그 다음으로는 입원실과 중환자실 부족 순입니다.
수술실 부족은 34건으로 0.1%에 그쳤습니다. 환자와 보호자 변심 4.6%, 1차 응급 처치 2.4%, 의료장비 고장 1.6%, 주취자(1.2%) 등의 사유도 있었습니다.
지역별로 보면 경기도의 재이송 비율이 26.5%로 가장 높았고, 이어 서울(15.3%), 부산(7.1%), 충남(6.5%)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충남 지역은 2차 재이송 건수가 971건으로 전국 2차 건수(5545건)의 20% 가까이 차지했습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제4차 응급의료기본계획을 통해 40곳인 권역응급의료센터를 50~60곳의 중증응급의료센터로 확충해 중증응급환자가 전국 어디서나 1시간 내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중증, 중등증, 경증 응급의료기관을 명확히 구분하고 환자가 중증도에 맞는 응급의료기관을 이용하도록 개편하겠다는 구상도 내민 상황입니다.
응급 환자가 치료할 병원을 찾아 전전하다가 안타깝게 숨지는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분주한 서울의료원 응급실 모습. (사진=뉴시스)
세종=주혜린 기자 joojoosk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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