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딤과 버팀의 시간들. 괴질의 100년 주기설까지 나돌던 펜데믹의 긴 굴길을 벗어났지만 여전히 부여잡은 숨줄은 생명선만이 아닙니다.
새해 벽두부터 이례적으로 민생을 강조했죠. 한국경제의 구성을 수출과 내수로 나눈다면 가계소비는 민생경제의 바로미터격입니다.
펜데믹 터널을 뚫고 보복 소비 효과를 본 것도 잠시, 경제 생태계가 풍진의 삶 그 자체입니다.
특히 새해를 맞는 정부 입장에서는 내수 활성화가 최대 난제입니다. 지난해 1~11월 소매판매액 지수(불변지수)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1.4% 감소했습니다. 소매판매액은 국내 상품판매액을 지수로 나타낸 대표적인 내수 지표입니다.
12월 지표가 나오지 않았지만 연간 기준을 감안해도 소매판매 하락 분석이 유력합니다. 어려운 경기를 말해주듯, 서민 경제는 입고 먹는 것부터 줄인다고 했던가요.
지난해 1~11월 의복·신발 등 준내구재 소비는 2.3%, 음식료품·화장품 등 비내구재 소비는 1.7% 하락했습니다.
더욱이 20년 만의 소매판매 감소로 내수 부진은 현실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는 가계소득과 소비의 제약하는 내수 취약성이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됩니다.
지난해 1분기 연 증가율 가계소비는 전년동기대비 4.59%로 보복소비 효과를 봤습니다. 하지만 엔데믹 선언에도 불구하고 회복은커녕, 2분기 1.39%로 3.2%포인트 급락했습니다.
3분기에는 급기야 0.04%에 머물면서 사실상 소비가 올 스톱 상태를 맞았습니다. 4분기 연 증가율은 나오지 않았지만 마이너스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습니다.
소득 하위 20%로 분류되는 1분위 수입이 줄고 상위 20%인 5분위 소득은 늘어나는 양극화 현상은 지출 씀씀이에서도 뚜렷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저소득 가구와 고소득 가구 간 소득 격차비율도 5배 이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어 고물가·고금리 그늘 속에 최상위를 제외하면 여력이 더 없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경제 관료들과의 현장 간담회가 열릴 때마다 소상공인, 자영업들의 외침은 대출을 싸게 해달라는 것도, 세제 부담을 덜어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물건을 팔아줄 손님이 올 수 있게 소비 활력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게 하소연입니다. 자산을 말하면 품삯을 받아 필수 생활비를 제외한 여윳돈을 저축하던지 소비 활동에 써야하나 쓸 여력이 없다는 게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요즘 같은 세상엔 자산의 개념이 주식, 코인, 부동산 등 투자 광풍에만 묶여있으니 그래서 금융투자세 폐지를 들고 나온 걸까요.
연일 최저치를 갈아치우는 저출산 재앙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출산율 하락 요인을 보면 지난 2020년 전후 집값 급등의 주거비와 사교육비 부담이 강하게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여윳돈이 없어 소비를 하지 않는데 애까지 낳을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사회안전망격인 사회적 기금이 다른 선진국처럼 탄탄한 것도 아니죠.
민생을 9차례 말해놓고 소득 재분배, 소비 진작을 위한 본연의 순기능은 보이지 않고 땜질식만 눈요기입니다.
민생을 대출과 세제 혜택 등으로 포장한 '2024년 경제정책방향'을 보고 있자니 또다시 견딤과 버팀의 시간들을 보내야할 때인가 봅니다.
이규하 경제부장 judi@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