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아파서 상급종합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습니다. 쇄골 근처에 주사를 맞아야 했는데 주사를 놓는 전공의가 서툴렀나 봅니다. 잇달아 실수를 연발했고, 환자는 통증에 짜증이 더해져 전공의말고 전문의를 불러달라 소리쳤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병원에 있는 동안 매일 전공의들만 와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전문의 보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선생님들한테 너무 짜증내면 안 된다”고 달래면서도, 따로 찾아가서 “환자가 예민해서 죄송하다”고 진땀뺐던 기억입니다.
지인이나 가족이 아팠던 사람이라면 정도만 다를 뿐 비슷한 기억은 대부분 갖고 있을 겁니다. 대학병원에 전공의 비율이 40%나 된다니, 아무리 도제식으로 운영된다고 해도 수련과정인 피교육생이 이렇게 많은 사례는 우리가 부러워하는 국가들에선 찾기 어렵습니다. 메이오 클리닉이나 일본 병원 등의 전공의 비율은 10%대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들려옵니다.
40%나 되는 전공의들 중 일정 부분은 당연히 전문의가 되는 코스일 겁니다. 제대로 돌아가는 병원이라면 이 과정에서 더 실력이 좋은 전문의를 키우거나 각 전문분야별로 전문의를 다양화해 중환자나 희귀병 질환 같은 부분에도 대응할 겁니다. 상급종합병원에 우리가 기대하는 건 이런 부분인데, 왜 상급종합병원에는 배우고 있는 사람만 있고 다 배운 사람들은 어디로 간 걸까요.
‘소아과 오픈런’이란 말 자체가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더이상 ‘아이가 아파 병원에 가서 몇 시간이나 기다렸다’는 류의 하소연은 어느새 당연한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소아과나 산부인과 병의원 자체가 없는 동네도 있습니다.저출산 시대 온갖 정책에 수조, 수십조원을 투입해 쏟아내더라도 막상 우리 동네에선 출산할 곳도 없고, 아이가 아파도 제때 치료조차 하지 못하는 세상이라면 아이를 낳고 싶을까요.
지역의료가 허약하다 못해 붕괴됐고, 의료전달체계가 엉망이 된 것도 뼈아픕니다. 공공병원들은 코로나19 때 큰 역할을 하고도 적자라는 이유로 외면받고 있습니다. 충북 단양군보건의료원에서 연봉 4억원에 아파트까지 내걸고도 근무할 응급 의사를 찾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소식까지 나옵니다. 서울이나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 근무할 분을 모시려면 몇 억을 드려야 할까요. 비수도권에선 살릴 수 있는 환자를 제때 치료하지 못해 결국 사망했다는 뉴스도 심심찮게 나옵니다.
전공의들도 특정 과로만 가기를 원합니다. 필수의료라는 과들 대부분은 정원도 채우지 못했습니다. 빅5라는 아산병원에선 해당 병원 간호사가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수술할 전문의가 없어 결국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그 와중에 미용GP는 마치 ‘하늘 위에 하늘’로 떠올랐습니다. 주 3~4일만 일해도 월 1000만원을 번다는 풍문이 돌 정도입니다. 복잡한 고난도의 일을 하지 않아도 최상의 워라밸을 누릴 수 있다니 혹한 사람만이 잘못은 아닐 겁니다.
그런데도 여지껏 정부는 손을 놓고만 있었습니다. 공공의료, 의료전달체계, 건강보험, 의료수가 등 온갖 곳에서 갖가지 문제가 쏟아져도 디지털헬스케어와 보건의료데이터에만 몰두하며 의료 산업화에 빠져 있습니다. 앞뒤 재지 않고 전광석화 같이 추진한 의대 증원이 그래도 호응을 얻는 이유는 그만큼 의료계에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기 때문입니다.
“의료인들이 그동안 정부와 적극적으로 협의하며 개선시켰어야 하는 문제들을 미루고 미루다 이렇게 곪아터진 것입니다.” 방재승 서울대 의대 교수협 비대위원장이 한 말입니다. 누가 의료개혁을 원하고 있을까요. 그 원하는 사람 중에 의료계도 포함됐길 바랍니다.
벅용준 공동체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진규 온라인뉴스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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