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검찰의 '통신 사찰' 의혹이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수사와 관계없는 민간인까지 그 대상이 되면서 '민간인 사찰'과도 맞닿아 있는데요. 과거에도 검찰뿐 아니라 국정원 등에서 비슷한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도, 기본권을 침해한다면 헌법 위반입니다. 법의 허점을 이용해 수사권을 남용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습니다.
대검찰청(왼쪽)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사진=연합뉴스)
사실상 헌법 제17조 위반…"수사권 남용"
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는 7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당 소속 인사 총 139명이 검찰로부터 통신자료를 조회당했다고 밝혔습니다. 국회의원 19명·보좌진 68명·당직자 43명·당원 9명 등인데요.
대책위는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과 연관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공권력 남용이 무차별적으로 자행됐다"라며 "통신 사찰을 당한 사람의 지인까지 합하면 피해자 수는 얼마에 달할지 짐작조차 못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최대 6개월의 '통보 유예'는 수사 당사자나 핵심관계자에게만 해당하는데,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3000명의 국민이 모두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있는 핵심 관계자라는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실제 검찰은 '3000여명을 통신조회 했다'는 본지 보도에 대해 해명하지 않고 있는데요. 얼마나 많은 통신자료를 조회했는지, 대상 범위는 어떻게 정했는지, 통보 유예의 구체적 근거는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고 '적법하고 정당한 절차'였다는 원론적 입장만 내놨을 뿐입니다.
그러나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헌법 제17조 규정한 침해한다는 점에서 위헌 소지가 존재합니다. 즉, 정당하지 않은 수사라는 겁니다.
중정·안기부·국정원…'민간인 사찰'의 유구한 역사
수사기관에 의한 '민간인 사찰' 의혹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거의 모든 정권에서 예외 없이 이뤄졌는데요.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는 각종 대공·공안 수사를 빌미로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의혹에 휩싸였습니다. 국정원을 출범시키며 고강도 개혁을 시도한 김대중정부에서마저 민간인 사찰 논란은 계속됐습니다.
당시 국정원은 불법감청 장비를 개발해 정치·언론인, 대통령 친인척, 고위공직자, 시민단체 활동가, 노동조합 간부 등 1800여명을 불법 사찰했다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노무현정부 시절에도 국정원은 인터넷 활동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패킷 감청' 논란이 정국을 강타했습니다. 패킷 감청은 수사기관이 인터넷 회선에서 오가는 전자신호(패킷)를 중간에서 빼내 수사 대상자 컴퓨터와 똑같은 화면을 실시간으로 시청하는 건데요.
당시 '패킷 감청'은 합법이었습니다. '수사기관이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수사를 위해 용의자가 보내거나, 받은 우편물·전기통신에 대해 통신제한조치를 할 수 있게 한다'는 통신비밀보호법 5조가 근거였습니다. 패킷 감청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면서 비로소 중단됐습니다.
이명박정부에서도 '사찰' 논란은 이어졌습니다. 국정원은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의 지시로 '포청천'이라는 공작팀을 꾸려 한명숙 전 국무총리,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등 당시 유력 야당 정치인과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이명박정부와 갈등을 빚던 여당 의원들도 사찰 대상에 포함됐던 걸로 알려졌습니다. 국정원은 또 이명박정부에서 박근혜정부까지 9년 동안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들에 대한 '블랙리스트' 작성해 불이익을 줬습니다.
이번 '통신자료 조회'는 지난 2021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사례와 판박이입니다. 공수처는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부와 소속 의원 89명 등의 통신자료를 조회하면서 논쟁을 촉발했는데요. 당시 야당이던 국민의힘은 "통신 사찰"이라고 비판하고 민주당은 적법한 수사라며 방어했습니다. 이번 검찰 수사에선 여야 입장만 뒤바뀐 모양새입니다.
검찰은 '윤석열 명예훼손 의혹'으로 수사받고 있는 기자들의 휴대전화 연락처에 저장돼 있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메시지를 교환한 사람들을 일괄적으로 조회한 걸로 보입니다. 강력 사건 등 일부에 한정해 통신조회가 이뤄져야 하고, 나머지에 대해선 영장을 받도록 법 개정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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