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유튜브 채널 스태프를 근로기준법상 '도급제 노동자'로 인정한 판결은 노동법 사각지대에 있던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도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있는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자빱TV 스태프들에게 밀린 임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은 근로시간·장소가 고정적이지 않아도, 일의 완성으로 보수를 받아도, 노동자일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도급(都給)과 노동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처럼 여겨졌습니다. 도급은 일의 완성으로 보수를 지급하는 사업주간 계약인 반면, 근로계약은 일의 과정에서 지휘·감독하고 임금을 지급해서입니다. 역설적이게도 근로기준법에 잠들어있던 도급제 노동자 개념을 깨운 건, 유튜브 채널 스태프 등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었습니다.
민주노총 배달플랫폼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10월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 대로변에서 '배달라이더 분노의 대행진·집회'를 열고 배달료 인상과 배달의민족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근 임금 소송에서 승소한 유튜브 채널 자빱TV 스태프들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기에 불리한 조건을 모두 갖췄습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건 물론 근로시간·장소 역시 고정적이지 않았습니다. 기본급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콘텐츠 완성을 '기준'으로 정산받았습니다. 스태프 일부는 다른 일과 병행했습니다.
그런데도 법원은 지난달 7일 자빱TV 스태프들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했습니다. 1심 판결문을 살펴보면, 재판부는 먼저 스태프들이 기획부터 연기까지 일의 과정에서 자빱의 지휘·감독을 받는 종속적 관계였다고 봤습니다. 근로계약서를 쓰지도 않았고, 겸직도 했지만 노동자성을 쉽게 부정해선 안 된다고 한 겁니다.
재판부는 다만 자빱TV 스태트는 시간제 노동자가 아니라 도급제 노동자라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스태프들은) 근로시간과 무관하게 실적을 기준으로 책정된 수당을 기여도에 따라 장기콘텐츠 종료 이후 임금을 지급받았다"며 "피고(자빱)에게 도급제로 근로제공을 한 것으로서 도급근로자에 해당한다"라고 판시했습니다.
근로기준법상 도급제 노동자로 인정된 사례가 이번 판결이 처음은 아닙니다. 하지만 노동계에선 사실상 사문화된 개념이었습니다. 노동계 전문가들도 취재팀에게 "'근로기준법에 '도급'이란 말이 들어갔을 리 없다"고 되물었을 정도입니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실장은 "고용노동부는 도급제 노동자가 적시된 근로기준법 47조와 최저임금법 5조3항과 관련해 한 번도 별도의 고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노동법 조항이지만, 고용부는 그동안 한 번도 이를 현장에 적용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자빱TV 스태프들을 대리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노동위원회에서도 의견이 갈렸습니다. 변론 과정에서 시간제노동자 주장을 주위적으로, 도급노동자 주장 예비적으로 청구한 이유입니다. 시간이 고정적이지 않고, 일의 완성으로 돈을 받는 사실에 대해 시간제 노동자 주장만으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겁니다.
때문에 재판부의 이번 판결은 오히려 기존 법리에 충실했다는 평가입니다. 범유경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재판부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 지위를 완화한 게 아니라 오히려 원칙적으로 지휘·감독 등 노동자성 여부를 꼼꼼하게 확인한 것"이라며 "스태프들이 자빱의 지휘·감독을 받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라고 1차적으로 판단한 뒤, 시간제인지 도급제인지를 판단했다는 점에서 기존 법리를 충실히 따랐다"고 했습니다.
새로운 노동자성을 인정한 판결로써 의미가 크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범 변호사는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은 상태로 일했더라도 당신이 노동자일 수 있다는 신호를 줬다"고 이번 판결의 의의를 짚었습니다. 이종훈 법무법인 사민 변호사는 "과거 공장 노동을 기준으로 노동자성을 판단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라며 "노동법 사각지대에서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법의 보호를 받을 여지가 커졌다"라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도급제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논의에 적극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오 실장은 "법원에서 근로기준법상 도급제 노동자가 인정된 만큼, 최저임금위원회는 이들에 대한 최저임금을 심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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