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윤석열 시대가 탄핵소추안 가결로 막을 내릴 가능성이 커지면서 넷플릭스와 손잡는 모양새를 취하던 정부 기조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습니다. 한국 콘텐츠와 미국 글로벌 플랫폼 결합을 통해 한미 문화동맹의 발전을 꾀한다는 목표였지만, 국내 미디어 산업 진흥을 위한 정책이 실종된 탓에 한국이 넷플릭스의 콘텐츠 하청 제작소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 바 있는데요. 정부의 친 넷플릭스 행보 속에 인터넷제공사업자(ISP)와 글로벌 빅테크 사업자 간 망이용대가 협상도 진전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한국에서 넷플릭스의 위상만 높인 채 국내 미디어나 통신 부문은 '잃어버린 2년7개월'이란 결과만 떠안게 됐습니다.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던 윤석열 씨는 지난해 4월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국빈방문할 당시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대표를 만나 투자를 독려했습니다. 넷플릭스는 앞으로 4년 동안 국내 콘텐츠 산업에 25억달러(약 3조30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윤 씨는 "넷플릭스의 파격적인 투자 결정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대한민국 콘텐츠 사업과 창작자, 넷플릭스 모두에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자화자찬했습니다. 이후 한덕수 국무총리도 같은해 6월 테드 서랜도스 대표가 방한하자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명분은 한미 미디어콘텐츠 산업 협력 방안 논의였습니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씨가 지난해 4월24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영빈관 접견장에서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가 한국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발표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씨와 넷플릭스 연결고리는 계속됐습니다. 올해 2월에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 테드 서랜도스 공동대표, 오징어게임 시즌2에 출연하는 배우 이정재씨를 초대해 오찬을 함께했습니다. 이 자리에서도 지속적인 K-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당부했습니다.
넷플릭스의 콘텐츠 투자 계획을 투자 성과라고 자신한 것과 달리 업계에서는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통상 해오던 수준이라는 평을 내놓았습니다. 지난 2021년 11월 넷플릭스는 "2015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 콘텐츠에 7700억원을 투자했고, 올 한 해에만 약 55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말했고, 2022년 1월에는 "한국에서 15개 오리지널 콘텐츠를 발표한 지난해에만 5000억원을 투자했는데, 올해는 25개를 발표하는 만큼 (투자규모를)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넷플릭스가 최근 투자를 확대해오던 것을 감안하면 4년간 3조3000억원은 통상 진행하던 수준이라는 시각입니다.
대규모 콘텐츠 투자에 가려 한국이 넷플릭스의 제작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나 망이용대가 실타래는 해결하지 못한 채 현재진행형 문제로 남게됐습니다.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 지적재산권(IP) 소유권을 직접 보유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습니다. 콘텐츠 흥행 여부에 관계없이 한 시즌의 사전 제작을 보장하고, 평균 이상 제작비를 지원합니다. 대신 IP에 대한 소유권을 독점하며, 해당 IP로 벌어들이니 수익을 모두 가져가고 있습니다. IP 소유 없이 콘텐츠 제작만 이뤄질 경우 국내 미디어 산업은 넷플릭스의 하청 공장이 될 수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읍니다. K-콘텐츠 열풍이 꺾일 경우 높아진 제작비만 남을 것이란 의견도 나옵니다.
망이용대가 문제도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씨가 넷플릭스에 환영의 뜻을 보내던 당시는 SK브로드밴드가 넷플릭스와 세기의 재판으로 불리는 망이용대가 2심을 진행하던 때입니다. 소송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됐던 것과 달리 그해 9월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는 망이용대가 소송을 취하하기로 했습니다.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앞서 있던 모든 분쟁을 종결했습니다. 21대 국회가 8개의 망이용대가 법안을 발의하며 법원 판결에 따라 법안을 병합해 대응한다는 계획이었지만, 법안은 모두 폐기됐습니다. 국내 ISP는 여전히 글로벌 빅테크와 망이용대가 논쟁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미디어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가 K-콘텐츠의 글로벌화를 진전시키는 등 순기능도 있었지만, 문제는 국내 산업에 대한 진흥책이 부족했고 결과적으로 글로벌 사업자와 기울어진 운동장이 지속됐다”며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다"고 평했습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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