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비운의 스마트폰, 넥서스4를 보고 싶다
2012-11-16 17:26:08 2012-11-16 17:34:56
저는 LG전자가 만든 구글 레퍼런스폰 '넥서스4'입니다. 제 이름을 포털에 입력하면 연관 검색어로 '구매대행' '해외구매' '공동구매' '구매방법' 등이 떠요.
 
유럽과 미국, 호주 등에서 출시되자마자 몇십분만에 동이 난 저는 한국에서는 출시되지 않기 때문에 사려는 사람들이 해외에서 구해오는 방법을 열심히 찾고 있어요.
 
몇몇 친절한 언론은 자상하게 해외구매 방법을 알려주는 기사를 내기도 했어요. 고맙게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나라 제조업체가 만들고 우리나라에서 태어났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구경할 수 없어요. 그 이유가 뭘까요.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이 '정보통신 강국'이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3G가 주력인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는 LTE망이 전국적으로 깔리면서 이제 3G폰이 예전 피처폰 취급을 받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지요.
 
이통사 입장에서는 3G보다 가입자당 평균 매출(ARPU)이 훨씬 높은 LTE폰을 팔고 싶어하고 제조사 역시 '부가가치'가 큰 LTE폰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처지인거죠.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는 몸값도 그리 비싸지 않아요. 해외출시 가격이 8GB모델은 299달러, 16GB 모델이 349달러입니다. 미국에선 2년 약정을 걸면 199달러에도 살 수 있죠. 우리나라 돈으로 치면 20만원이 좀 넘을 거예요.
 
최신형 전략 스마트폰 가격이 100만원을 왔다갔다하는 시장에서 최신폰과 성능은 비슷하면서 가격은 20만~30만원짜리인 폰이 구글 레퍼런스폰의 이름으로 한국시장에 나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죄송한 얘긴데 이통사나 제조사로서는 올해 목표로 잡은 매출계획을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요.
 
저만큼 가격대 성능비가 훌륭한 스마트폰은 이제껏 없었다고 자부합니다. 100만원짜리보다 결코 처지지 않는 스마트폰이 20만~30만원이라면 100만원짜리를 살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냔 얘기인 거죠. 갤럭시나 옵티머스는 물론이고 아이폰5도 적지않은 타격이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기도 해요.
 
LG전자 역시 저를 만들어주셨지만 고가로 형성되어 있는 국내시장에서는 비싼 폰을 팔고 저는 해외판매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이통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입자들이 가급적 빨리 LTE로 넘어가야 하는데 저처럼 저가격 고사양폰을 3G로 팔려면 아예 LTE 전략을 다시 짜야할 수도 있어요.
 
게다가 3G이기 때문에 저를 선택하신 분들은 이통사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데이터 무제한요금제를 압도적으로 선호할 수밖에 없죠. LTE의 '봄날'은 멀어지고 악몽같은 무제한요금제의 시절이 더 탄력을 받고 계속 되는 거죠. 이것도 죄송합니다.
 
저는 이런 폰이예요. 시장을 뒤엎지는 못해도 크게 한번 흔들 수는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해외에선 잘나가지만 국내에서는 아무도 존재자체를 알리고 싶어하지 않아요.
 
아마 시간이 더 흐르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름조차 가물가물해지는 슬픈 운명일 거예요. 하지만 이런 폰이 있었다는 건 기억해주세요. 고가 시장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저같은 비운의 스마트폰은 앞으로도 계속 생기겠지만.
 
이호석 IT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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