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정부의 각종 경제정책방향이 정부 중심의 통계를 기반으로 결정되면서 정책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계속되는 불황에 국민들은 아우성이지만, 정책당국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통계를 근거로 '선방', '선전', '대박' 등의 찬사를 동원해 가며 다른 나라들보다는 낫다고 자위하고 있다. 뉴스토마토는 통계의 오류에 따른 정책실패로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고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안 등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재정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비전통적이고, 창의적인 경기부양책을 내 놓겠다"
지난 9월4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의 장담 후 일주일만에 정부는 '이차(利差)보전'이라는 이른바 '창의적'이라고 자평하는 재정운용계획을 발표했고, 이것은 곳바로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됐다.
'이차보전'은 쉽게 말해 정부가 직접 자금을 빌려주던 것을 은행 등 민간에게 대신 빌려주도록 하고, 정부는 정부가 빌려줄 때보다 비싼 은행 이자만 일부 부담해주는 방식이다.
1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정부 융자지출에서 내년에 이차보전사업으로 전환되는 사업규모는 총 3조5228억원이며, 내년에 새롭게 이차보전사업으로 추가되는 사업도 3조1700억원에 이른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내년 예산안 중 실제 이차보전 재정 1200억원 정도로 6조7000억원 가량을 더 지출하는 것처럼 효과를 낼 수 있게 되는 셈이다.
2013년 '균형재정'을 이명박 정부의 치적으로 삼고자 하는 정부의 입장에선 손 안대고 코를 풀 수 있는 그야말로 '창의적'인 방안이다.
◇ '창의적' 이차보전이 '반복적' 재정악화 부를수도
문제는 정부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외형과는 다르게 다양한 문제점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의 내년 예산안을 심층분석한 국회예산정책처의 '2013년 예산안 분석 보고서'를 보면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이차보전의 확대 및 유지가 이자를 보전해야 할 정부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등 대출의 수요자들에게도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차보전이 단기적으로는 총지출 증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향후 이차보전사업이 확대되고 지속되면 매년 이차보전액이 누적·확대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국가재정에 오히려 부담이 되고, 그 부담이 미래 세대로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특히 예산정책처는 저신용 중소기업의 경우 이차보전이 확대되면 민간 대출금리 상승으로 정부자금을 빌려쓸 때보다 더 많은 이자부담을 하게되고, 대출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등 대출여건의 악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올해 중소기업의 재정융자 이자율은 평균 3.78%지만 내년에 이 이자율이 이차보전대출로 변경될 경우 신용등급이 7~10등급인 저신용 중소기업은 민간융자를 이용해야 하는 환경에서 대출이자율도 시중은행 평균금리인 4%후반대 이상으로 높게 부담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자의 차액을 보전한다고 해도 민간과 정부의 융자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대출 자체가 어렵게 될수도 있다.
지출의 주체가 정부가 아닌 민간으로 바뀌면서 대출 문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 경우 설사 대출이 가능하더라도 이자부담이 확대돼 정부의 재정만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결과적으로 이차보전은 균형재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눈속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은 "좋게보면 적은 돈으로 재정지출을 크게 늘리는 효과가 있지만, 나쁘게 보면 실질 부채를 숨기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안민석 민주통합당 의원은 "정부가 보증을 서지 않는다 해도 LH공사의 경우 LH공사법에 의해 손실이 나면 정부가 이를 보전해 줘야 한다"면서 "이차보전은 결국 정부가 짊어져야 할 부담을 민간에 전가하는 숫자놀음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 성장률 효과 부풀린 '재정조기집행' 내년에도 한다는데..
정부가 비판을 무릅쓰고 '이차보전'확대를 선택한 데에는 균형재정이라는 사실상 '허황된' 꿈이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2%대의 저성장이 예고되는 등 정부가 균형재정 목표에서 전제한 4%성장은 이미 붕괴된 것이 사실이다.
정부입장에선 재정지출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있는 재정을 최대한 활용해 성장, 이를 통해 세입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 성장정책 역시 숫자놀음에 불과한 것이 지난 5년간 확인됐다는 점은 국민들을 암울하게 한다.
정부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상반기에 정부재정의 60% 이상을 조기집행해서 성장률을 끌어올리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이미 무의미한 정책임이 확인됐다.
정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위기를 극복하겠다며 2009년 상반기에만 연간 정부지출의 64.8%를 집행했고, 2010년에도 61%를 상반기에 조기집행했으며, 유럽재정위기의 여파를 겪고 있는 올해도 상반기에 60.9%의 재정을 몰아서 집행했다.
상반기에 경기를 띄워서 그 분위기를 하반기로 이어가겠다는 취지였지만, 실제 재정조기집행의 성장률 재고효과는 정부의 추산과는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는 한국조세연구원의 재정조기집행의 성장률 재고 모형에 따라 재정조기집행이 최대 0.5%포인트의 성장률 재고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정부가 재정을 조기집행하지 않았다면 올해 우리나라는 1%대 성장에 머무를 수도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재정을 앞으로 당기면 뒤에는 낮아지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이라면서 "정부가 얘기하는 성장효과는 잘못 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재정조기집행을 통해 기대할 수 있다는 성장효과가 단순히 정부의 관리대상수지만을 평가한 점도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요인 중 하나다.
허원제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중앙정부야 행정부처간에 정책조율이 쉽지만 지방정부는 조기집행하라고 해서 무작정 할 수도 없고, 한다고 해도 지방경제에 득이 되지 않을 수 있다"면서 "조기집행에 동참하면 예산인센티브를 받으니까 울며 겨자먹기로 따르겠지만, 물가가 높은 지방은 조기집행을 해서는 안 되고, 하기도 싫은 조치"라고 평가절하했다.
허 박사는 "재정 조기집행이 중앙정부의 입장에서 정책을 리드하는 효과는 기대할 수 있겠지만, 국가경제에 정말 도움이 되는지는 지방경제와 함께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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