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동생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상속소송 항소 시한 마지막 날인 15일 끝내 항소장을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다. 이로써 선대회장의 유산을 놓고 벌이는 형제 간 법정싸움이 2라운드로 접어들게 됐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1심이었다. 소송가액만 무려 4조850여억원에 달했다. 형제는 둘로 나뉘어 서로를 향해 날선 공방을 주고받았다. 감정적 발언이 여과 없이 전해지면서 국민은 막장드라마의 끝을 봐야만 했다. 외신들도 ‘한국식 통속극(Korean soap drama)’에 비유하며 앞 다퉈 관련 소식을 각 국에 타전했다.
천문학적 금액을 놓고 다투는 우리나라 최고 재벌가의 모습에서 국민은 깊은 상실감과 함께 허망함을 느꼈다. 싸움은 삼성과 CJ 간 전면전으로 확대되면서 제사상으로까지 번졌다. 장남을 우선시하는 가부장적 문화는 약자에 대한 동정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이건희 회장을 직격했다. 경제민주화 광풍과 맞물려 여론이 더 없이 싸늘해지면서 이 회장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1심 결과는 이건희 회장의 완승이었지만 과정은 참혹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 이유였다. 특히 이 회장의 발언이 논란의 불씨가 됐다. 그룹을 위태롭게 만든 것에 이어 가족사마저 비참하게 이끈 형에 대한 원망이 깊었지만, 이에 대한 이해보다는 발언 자체가 도마 위에 올랐다. 그만큼 국민 정서를 역행한 막말이었다. 하나 부족할 것 없는 부와 명예를 지닌 이 회장이었기에 비난의 강도는 더욱 거셌다.
숱한 논란과 깊은 상처를 남긴 1심 과정이 이날 이맹희 전 회장의 항소로 또 다시 재연될까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재계에서는 벌써부터 이건희 회장의 입을 주목하기 시작했으며, 이맹희 전 회장과 그의 장남인 이재현 CJ 회장이 펼칠 여론전 수위에도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과 CJ는 이번 소송으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형제 간 존중과 우애는 오간데 없고, 승패만이 존재하는 냉정한 싸움터에 마주 섰다.
이제 끝을 봐야 한다. 그리고 싸움의 끝은 화해여야만 한다. 1심 재판부가 남긴 “선대 회장이 남긴 유지에는 일가가 화합해 화목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뜻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조언을 양측 모두 새겨들어야 할 때다. “늘 자기 욕심만 챙겨왔다”며 동생을 돈이나 쫓는 욕심쟁이로 비화시킨 형이나 “한 푼도 내줄 생각이 없다”고 버티며 형을 조롱한 동생이나 선친의 엄한 꾸짖음을 떠올려야 한다는 지적은 국민 바람이기도 하다.
가슴에 맺힌 원망을 털고 품을 줄 알아야 한다. 비록 형이 동생을 욕 보이기 위한 의도를 갖고 1심 판결에 불복, 2심으로까지 진흙탕 싸움을 이어갔지만 그래도 안을 수 있는 사람은 동생 이건희 회장이다. 그래야 삼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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