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경진기자] 아마도 우리나라 정치권은 국민들의 신뢰를 받는다는 소리를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현안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치고받고 싸우는 모습이 어쩔 수 없는 한국 정치인들의 자화상이다. 국민들은 그 모습에 익숙하고, 그래서 크게 기대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요즘처럼 정치권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든 적도 없는 것 같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놓고 시작된 여야의 대치는 풀릴 듯 하면서도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종합유선방송(SO) 정책 결정권을 새로 만들어지는 미래창조과학부로 넘기는 문제를 놓고 여야는 새정부가 출범한 지 20일이 가까워지는데도 여전히 아웅다웅만 하고 있다.
방송의 독립성을 지키겠다는 민주통합당과 박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정보통신기술(ICT) 통합부처 정책을 무조건 관철시키겠다는 새누리당 간의 양보없는 대립은 여야가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고 끝내기에는 이미 정거장을 한참 지나쳐 버린 것 같다.
원내대표단에서 시작된 협상 파행이 계속되자 주도권이 여야 대표급으로 넘어가면서 대타협이 이뤄지는 듯 했다. 하지만 불씨는 엉뚱하게도 집안 싸움으로 옮겨붙었다. 문희상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8일 공개석상에서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박기춘 민주당 원내대표를 싸잡아 비판하면서 지도부 내에서 파열음이 나왔다.
새누리당도 상황은 비슷하다. 황우여 대표는 지난 8일 문희상 비대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SO 업무를 미래부로 넘기고 방송의 공정성을 추후에 담보하는 내용으로 합의했지만, 이한구 대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 대표는 오히려 황 대표가 주도해 만든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직권상정도 못하고 있다면서 총구를 내부로 돌렸다. 여야의 대치로 시작된 싸움이 내분으로 비화된 것이다.
급기야 정부조직법 파행의 책임을 떠넘기는 여야의 행태는 이제 스스로 '우리를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로 인정해달라'고 요청하는 웃지못할 일까지 벌어졌다.
이철우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14일 양측의 원내대표단 협상이 또 다시 성과없이 결렬됐다는 내용의 브리핑을 하면서 "야당에서 식물여당이라고 비판하는데, 식물국회 안에 야당도 같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도 식물 상태지만 야당도 마찬가지므로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의학적으로 볼때 환자가 식물인간 상태가 지속될수록 의식을 회복할 가능성은 그만큼 희박해진다. 식물국회가 무슨 자랑인 것처럼 떠드는 정치권이 아예 회생불능 상태가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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