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내연남의 아이를 낙태하는 조건으로 50억원을 받은 내연녀에게 공갈죄가 적용될까. 최근 법원은 윤리적인 비난 대상은 되더라도, 협박은 아니라고 봤다.
지난 2004년 한 등산모임에서 알게된 A씨(46)와 자산가인 유부남 B씨(61)는 6~7개월 후 내연관계로 발전했다. 이들은 3년여 동안 만나면서 가임기를 피해 한 달에 1~2회 정도 성관계를 맺었는데, A씨는 B씨로부터 2007년부터 생활비 명목으로 월 500만원을 받았다.
B씨와는 달리 임신을 원했던 A씨는 배란기를 확인하는 등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아오다 결국 2008년 11월 임신했다.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A씨는 B씨에게 프랑스에 다녀온다고 말한 뒤 유산을 방지하기 위해 산부인과에 입원했다. A씨는 임신이 안정기에 접어든 2009년 1월에서야 B씨에게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통해 임신 사실을 알렸다.
당황한 B씨는 일방적으로 낙태를 요구했고, A씨는 아무 말도 안하고 울기만 했다.
사태를 수습하려고 중개인을 내세운 B씨는 돈을 주겠다며 낙태를 지속적으로 요구했고 A씨는 아이를 낳겠다고만 했다. B씨가 계속해서 낙태를 종용하자 A씨는 "100억을 주면 낙태하겠다"며 버텼고, B씨 측에서 여러 번 금액을 낮추다가 50억원으로 합의했다. 그런데 B씨는 A씨가 낙태하자마자 A씨를 공갈죄로 고소하며 "50억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서울고법 형사9부(재판장 김주현)는 지난 11일 A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공갈죄가 성립한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고 15일 밝혔다.
재판부는 "50억원이 낙태 대가로는 큰 금액이고, A씨가 별도의 계좌를 마련해 인출한 돈을 숨겨둘 준비까지 한 점 등은 비윤리적이라는 비난의 대상은 될수 있다"면서도 "A씨는 아이를 낳겠다고만 했을 뿐 B씨가 말하기 전까지 먼저 낙태를 조건으로 돈을 요구한 적이 없고, '시위를 하겠다'는 발언은 협상 도중 감정이 격해져 우발적으로 한 것으로 볼 여지가 많아 돈을 갈취하기 위해 B씨를 협박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50억의 합의금은 B씨가 혼외자 부양과 수천억 원대에 달하는 재산에 관한 분쟁을 우려해 임의로 준 것으로 볼 여지가 크고, 18세 연상의 유부남인 B씨와 독신 여성인 A씨가 4~5년에 걸쳐 맺어온 연인 관계의 청산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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