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바스티앙 비베스(사진)는 유럽에서 각광 받는 프랑스 출신의 젊은 만화가다. 아직 서른이 채 안된 나이인데도 수상경력이 무척이나 화려하다. 2012년 만화비평가 협회(ACBD) 대상, 2011년 만화 전문 서점상, '르푸앙' 선정 2011년 올해의 책 20선(이상 <폴리나>), 2009년 앙굴렘 세계 만화 페스티벌 '올해의 발견 작가상'(<염소의 맛>) 등 전세계 만화계로부터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제공=한국만화영상진흥원)
화가이자 사진작가, 영화세트 디자이너인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비베스의 만화에는 자연스럽게 예술적 향취가 묻어난다. 다양한 스타일의 유려한 데생, 생각의 여지를 제공하는 컷 연출, 삶에 대한 사색으로 이끄는 대사 등이 비베스 작품의 특징이다. 무엇보다 만화작가로서 가장 큰 장점은 이야기를 소화해내는 폭이 넓다는 것이다. 이야기 속에 깊이 있는 삶의 성찰을 담되, 화풍은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실험성 짙게 변한다.
세계 각국의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국내에도 <염소의 맛>, <폴리나>, <그녀(들)>, <사랑의 혈투> 등 이미 여러 작품이 소개된 바 있다. 한국의 젊은 만화가들도 비베스의 작품에 매료된 덕분에 18일까지 열리는 부천국제만화축제에도 초청됐다. 15일 부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5층에서 만난 바스티앙 비베스에게 그의 작품세계와 이야기 창작의 비밀에 대해 살짝 물어봤다.
-부천국제만화축제를 방문하게 된 계기는? 방문 소감도 함께 이야기해달라.
▲한국의 젊은 만화가들이 보고 싶어 하는 작가로 선정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초청했다. 당시 미국, 일본, 한국 이렇게 세 나라의 행사에 초청 받은 상태였다. 미국과 일본은 이미 방문도 해봤고 한국에 대해서는 문화나 여러 가지가 궁금했던 게 많던 터라 이곳에 오게 됐다. 원래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것을 안 좋아하는데 한국이라고 하길래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축제에 와서 각종 프로그램, 웹툰 작가 교육 등을 보니 무척 즐겁고 만족스럽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 독자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염소의 맛>의 예를 들면 국경을 떠나 한 여자와 한 남자의 만남을 다룬다. 포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것 같다.
-고등학교 졸업 후 페닝겐 대학에서 그래픽 아트를 공부하고, 고블랭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했다. 특이하게 느껴지는 건 애니메이션 공부한 점인데 그 이유가 궁금하다. 종이만화를 그릴 것이란 걸 염두에 두고 선택한 건가?
▲’애니메이션을 하겠다, 만화를 하겠다’를 정하기 이전에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소양처럼 미술공부를 해왔었고, 그 와중에 애니메이션 공부도 하게 됐다. 그러다가 나는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거기에 맞는 매체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됐다. 일러스트로 표현하는 것은 한 장으로 압축해 짧게 해야 하기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미처 다 못 할 수 있고, 애니메이션 같은 경우는 혼자 작업을 하려면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결국 종이만화라는 것 자체가 내가 생각하는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한 최고의 수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뭔가를 하기 위해 의도해서 공부한 것은 아니고 자연스럽게 매체를 정하게 됐다.
-이번 부천국제만화축제의 주제가 '이야기의 비밀'이다. 당신 작품과 관련해 이야기 창작의 비밀을 소개해줄 수 있나?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이야기의 영감을 받지는 않는다. 대신에 내 작품에 나오는 인물 캐릭터는 실제 주변에 있는 인물들에게서 영감을 받는다. 나는 마치 판타지처럼 이야기 상상하기를 좋아한다. 예를 들어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어떤 사람을 봤을 때 내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이미지들이 있다. 그것을 토대로 상상한 인물을 내 만화에 그대로 사용한다. 내 작업의 비밀이다.
-작품을 보면 특히 여백과 생략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작품의 형식이 대사 속에도 그대로 반영되는 느낌이다. 가령 <폴리나> 중 '여유를 가지고 응시하지 않으면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소용 없어.' 같은 보진스키의 대사의 경우는 어떻게 보면 작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동의한다. 그 대사를 포함해 작품에 나오는 대사들은 나 스스로 가지고 있는 예술적 견해와도 같다. 창작활동을 하면서 계속해서 느끼는 부분이다.
-작품을 보면 <그녀(들)>은 펜, <내 눈 안의 너>는 색연필을 선택했다. 또 그림 기법에 있어서도 어느 작품에서는 심플하면서도 분명한 라인으로 덩어리를 잡아내는가 하면 또 다른 작품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묘사를 한다. 색상도 <폴리나>나 <염소의 맛>은 한 가지 색, <그녀(들)>이나 <내 눈 안의 너>의 경우 다채로운 색을 택한다. 만화를 그리는 도구나 만화 전체의 컨셉트를 선택할 때 기준은 무엇인가?
▲그림을 아주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그림 그리는 것보다는 이야기를 만드는 데 더 많은 에너지가 든다. 오히려 그림을 그릴 때는 힘을 빼는 편이다. 이야기의 줄거리가 있으면 시각적으로 그걸 구현하는데 어떤 형식이 좋은가, 그리고 어떤 도구로 표현할 때 이 이야기를 잘 나타낼 수 있는가를 구분해낸 후 작업을 한다. <폴리나>의 경우 무용수의 실루엣, 움직임의 선이 많기 때문에 단순하게 붓 하나와 회색계열 명암으로만 표현했다. 생동감 있는 선을 표현하기 위해 붓과 회색이면 충분했다. 그런 것처럼 각 이야기를 구현하는 데 있어 가장 좋은 방법을 찾는다.
-작품 속에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이 많이 등장한다. 여성을 미지의 존재처럼 그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성작가로 오해 받을 만큼 섬세하게 상황과 심리를 묘사한다. 여성을 보는 작가의 입장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여자들은 알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어려서부터 강했다. 11살 정도까지만 하더라도 여자아이들과 이야기하며 재미있게 놀았는데 사춘기 이후로 여자아이들이 갑자기 거리를 두고 자기와는 다른 존재들처럼 성숙해지고 하니. 도대체 여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여자들은 어떻게 살아가는 건지 궁금했다. 나는 형밖에 없고 주변에 여자도 없고 사춘기 때 여자와 사귀지도 않고 그림에만 열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궁금했다. 신비로운 존재라고 생각했고 그런 미스터리한 면에 대해 계속 그 때 생각했던 기억들을 작업에서 내놓고 있다.
-지금도 여성이 그렇게 미스터리한가?
▲그렇지 않다. 지금은 여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 수는 없지만 그 전보다는 훨씬 더 이해하고 있고, 남자와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앞으로의 도전해보고 싶은 이야기 소재나 주제가 있다면? 향후 계획에 대해 말해달라.
▲만화라는 장르 자체가 지닌 수많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다뤘던 주제들뿐만 아니라 인디만화에 담을 만한 이야기 등 수많은 주제를 생각하고 있다. 우선은 유년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갈 생각이다. <폴리나>처럼 성장 스토리에 집중하되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유년시절을 소재로 좀더 많은 것을 담는 작업을 앞으로도 좀더 깊게 파고 싶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