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상반기에 우리나라가 사상 최대의 무역흑자를 쌓았다. 그러나 국민의 체감경기와 낙수효과는 제로에 가깝고, 경제가 어렵다는 말만 들린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무역수지는 52억8600만달러로 29개월째 흑자를 기록했으며, 올해 상반기 무역수지는 202억7500만달러로 역대 최대 실적을 쌓았다.
특히 지난달 일평균 수출과 상반기 일평균 수출은 각각 22억8000만달러, 21억3000만달러를 기록해 이 분야에서도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처럼 최근의 무역동향을 숫자로만 보면 선진국 경기가 주춤하는 상황에도 우리나라는 비교적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산업부도 "상반기 세계 주요 70개국의 수입시장이 1.7% 증가할 때 우리 수출은 3.5% 늘었다"며 우리나라가 선전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다소 시각이 엇갈린다. 수출이 늘어나고 사상 최대의 무역흑자를 달성했다면 그만큼 내수경기가 활성화돼 경제에는 활력이 넘쳐야 하지만 주위에 들리는 것은 먹고살기 어렵다는 아우성뿐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 경제가 본격적인 불황기에 접어들 때 겪는 불황형 흑자에 빠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불황형 흑자란 수출과 수입 모두 더디게 증가하거나 감소하지만 수입이 수출보다 더 많이 줄어 외견상으로는 수출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다.
◇2010년 이후 상반기 수출입 동향(자료=산업통상자원부)
실제로 지난 2010년 이후 무역동향을 보면 5년간 수출이 610억달러 늘 때 수입은 597억달러 증가했다. 정부가 매분기 또는 해마다 '최대 실적'이라고 무역성과를 자랑하지만 그런만큼 수출이 많이 늘어난 게 아니라 최근 몇 년간 수입 증가가 둔화됐던 것.
6개월간의 경제지표를 봐도 연초부터 원·달러 환율이 급락해 최근에는 2008년 이후 최저인 1010원대로 떨어졌지만 수출이 줄어든 것을 상쇄할 만큼 수입이 늘지 않았다. 상반기 수입 증가율은 2.7로, 수출 증가율(2.6%)보다 0.1%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또 정부는 중소·중견기업의 수출증가율과 수출 비중이 꾸준히 증가했고 발표했지만 중소·중견기업은 여전히 경기침체에 따른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은행과 전국경제연합회 등이 최근 발표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과 경기전망 자료들을 보면 올해 1월부터 경기실적과 경기전망은 하락세를 겪고 있다. 특히 6월 기준 대기업 BSI는 81, 중소기업은 72를 기록해 중소기업의 경영악화가 더 심각했다.
아울러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중소·중견기업은 정부의 해외 판로지원이 부족하고 경기침체로 매출 증가폭이 매년 감소한다고 토로했다. 중소·중견기업의 수출이 늘어났다고 해도 그 혜택이 중소기업 경기회복에까지 연결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최근 무역 흐름은 불황형 흑자라고 볼 수 있다"며 "경제는 곧 '심리'인데 경제주체에 긍정적 신호를 줄 대안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불황형 흑자 또는 '무늬만 무역흑자'가 고정화될 기미를 보이자 정부가 우울한 경제심리를 회복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현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지금 우리나라 수출은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과 중국 경기회복에 명운이 걸려 있어 선진국 경기회복이 지연될 경우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며 "국내 소비와 기업의 투자심리 활성화를 유도할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LG경제연구원 관계자 역시 "불황형 흑자 돌파와 내수경기 진작을 위해 확장적 재정 정책기조를 유지하고 가계부채 감축 등에 주력해야 한다"며 "수출을 통한 수익이 낙수효과로 연결되도록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해소 대책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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