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이냐 파산이냐 기로에 선 그리스 운명은 이번주 최대 고비를 맞을 전망이다. 그리스는 당장 오는 5일 국제통화기금(IMF)에 3억3000만 유로를 상환해야 한다. 당초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은 이날까지 채권단과 구제금융 협상을 완료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지만 현재로서 실현 가능성은 제로다.
결국 현금이 바닥난 그리스가 언제 부채상환 불능을 선언할지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예사롭지 않은 발언들이 잇따르며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디폴트 임박'이라는 단어가 그리스 내부에서도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는 것.
바루파키스 장관은 "디폴트 임박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고 언급했고 라가르드 IMF 총재도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이탈)도 여러가지 가능성 가운데 하나"라며 향후 닥칠 그리스 사태가 몰고 올 위험성에 대해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디폴트 예정된 수순" vs "극적타결 가능"
"시간 문제일 뿐 그리스 디폴트는 예정된 수순이다."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는 그리스가 조만간 손을 들거라는게 협상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5일에 가까스로 부채를 상환한다 해도 이후 빼곡한 상환일정이 기다리고 있는 만큼 현재 잔고만으로는 이달 중순까지 버티기도 버거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오는 12일 IMF에 3억4000만 유로를 갚아야 하는데다 같은 날 20억 유로 규모의 단기국채 만기도 막아야 한다. 이어 16일에는 IMF에 5억7000만유로(IMF)를, 19일에는 16억유로의 국채 롤오버도 감당해야 한다.
◇(자료=블룸버그)
더는 물러설 곳이 없음에도 그리스는 여전히 뻣뻣하다. 채권단이 요구하는 긴축에 대해 '과도하다'며 부정적인 뉘앙스만 풍기고 있고 채권단 역시 '아무런 진전 없이 시간만 버리고 있는 꼴' 이라며 현재 상황에 대해 비관적인 어조로 일관하고 있다.
양측 간 미묘한 신경전이 극에 달하고 있는 가운데 협상 교착상태의 원인을 서로에게 떠넘기고 있는 실정이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기고를 통해 "진전 없는 협상의 원인은 그리스 정부가 아닌 국제채권단 탓"이라고 쏘아붙였다. 채권단 역시 협상타결 여부는 그리스 양보 뿐이라고 맞서고 있다.
협상의 최대 키를 쥐고 있는 독일 역시 협상 진전에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도 향후 극적 협상타결에 대한 기대감을 낮추는 대목이다.
미쉘 게이픈 바클레이 이코노미스트는 "양측 간 입장 차가 워낙 커서 협상 타결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는게 사실"이라며 "그리스가 채권단 측과 조속한 시일 내에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 결국 디폴트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막판 극적 협상타결에 대한 기대의 끈을 놓지말아야 한다는 시각도 일부 존재하고 있다. 벼랑 끝으로 몰린 그리스 정부에서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 이유다.
그리스 집권당 시리자 정부 대변인은 "채권단과 대립하고 있는 일부 긴축요구에 대해 협조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협상의 마지노선으로 설정했던 노동시장 개혁과 공무원 연금 삭감에 대해 물러설 용의가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마뉴엘 바루소 전 EU 집행위 의장도 "유럽 정책자들은 디폴트 사태를 손 놓고 기다려서는 안 된다"며 "이를 막을수 있도록 어떤 일이라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디폴트 이후 오히려 협상 속도 빨라질 것
구제금융 합의 없이는 그리스가 6월 말 까지 갚아야 할 16억유로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 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시장에서는 디폴트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가운데 이를 감안한 대비책 마련에 착수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점점 힘이 실리고 있다.
그리스 문제가 '통제불능' 즉, 디폴트에 빠질 가능성이 60%에 육박한다고 유명 이코노미스트인 모하메드 엘 에리안 알리안츠 수석 경제고문도 경고한 바 있다.
지금은 협상타결에 대한 막연한 기대보다는 '사고(accident)'에 대한 대비가 우선이라고 보는 시각도 바로 이 때문이다.
유로존 관계자들은 그리스가 조만간 디폴트를 선언하고 결국 다음달까지 협상을 이어가는 것이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라고 보고 있는 분위기다. 오히려 디폴트를 빨리 선언할수록 협상속도가 더 가속화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그렉시트를 원치 않는 그리스나 유로존 각 국의 금융시스템 붕괴를 우려하는 채권단이나 극에 몰리는 만큼 빨리 타협점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벌써부터 그리스 은행에서 예금을 빼가는 고객들이 급증하며 디폴트를 예견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달 그리스 은행의 예금 잔고는 지난 2005년 이후 10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협상 타결에 대한 기대감이 희석되면서 지난주 단 이틀 동안 8억유로의 예금이 그리스 은행에서 인출됐다"며 "뱅크런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수경 기자 add1715@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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